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바다가 보이는 비탈진 언덕에/ 미술관이라고 명패를 단 창고 같은 조그만 건물/ 안에는 진열품 하나 없다// 꽉 채우지 않은 벽면의 일정한 간격/ 그 파격의 틈새로/ 햇살은 막무가내로 비집고 들어와 빗금으로 살랑거렸다/ 화려했다/ 햇살 작품// 태평양 건너/ 제주의 억새밭 뒤흔들고 끼어든 바람/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바람을 전시하다니/ 바람 소리를 전시하다니/ 세상의 소리를 보라고 전시하다니/ 오. 관세음(觀世音)보살’ (졸시 ‘바람미술관’ 전문)
정말 바람을 전시하다니, 세상 그런 미술관도 다 있는가. 바람, 아니 바람 소리를 전시하다니. 이는 파격이다. 하기야 관세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기보다 보라고 강조했다. 보는 소리. 이런 경지는 어떤 경지일까. 우선 서귀포에 가보자. 거기 산방산과 마주하는 언덕에 비오토피아 단지가 있고 그 안에 특이한 미술관 세 군데가 있다. 물·바람·돌. 제주의 특성을 살려 이들 세 가지를 주제로 한 아담한 미술관이다.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이다. 단순하면서도, 그러니까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감동을 듬뿍 안아가게 한 설계다. 미술관 형식에 대한 도발적 시도다. 그래서 물을 전시하고 있다. 아니 수면에 비치는 하늘이나 구름을 전시하고 있다. 자연을 인위적인 전시공간 안으로 적극 끌어들인 새로운 시도다. 나는 이 이색공간을 조용히 관람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바람미술관’은 여행길에서 나온 즉흥시다. 이 졸시를 표제작으로 조촐한 시집 한 권을 출판했다. 바람미술관. 몇몇 독자들은 제목이 신기하다고 했다. 아니, 한 친구는 바람미술관을 ‘바람난 미술관’이라고 자꾸 불렀다. 나는 기분 나쁘다면서 똑바로 부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친구는 느물거리면서 바람난 미술관이라고 불렀다. 미술관이 바람나다니, 바람난 미술관!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더니, 언젠가는 나의 시집 제목이 ‘바람난 미술관’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바람나다’라는 표현은 정상궤도에서 뭔가 일탈했다는 의미다.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바람난 사람 대신 바람난 미술관. 나는 바람난 미술관을 좋아해야 할까 보다.
궤도이탈. 예술의 속성은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서 창조력은 과거에 대한 끝없는 의문 속에서 커지게 마련이다. 어떤 전시를 가보면 출품작이 비슷비슷해 불쾌하게 할 때도 있다. 개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발상법에 비슷한 기법, 흡사 한두 사람의 작품 같다. 주어진 채 바퀴 안에서만 안주한 결과다. 다소 엉성해도 나만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궤도를 벗어나고 싶은 바람난 미술관. 나는 이제 바람난 미술관을 사랑하기로 했다. 새로운 창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