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가 젊은 시절에 과거시험장을 소재로 그린 ‘공원춘효도’가 미국인 소장가에게서 환수돼 추정가 4억~8억원으로 경매에 오른다. /사진제공=서울옥션
“과거 시험장의 봄날 새벽은 1만 마리의 개미가 전쟁을 치르는 것 같구나(貢院春曉萬蟻戰鬪)”젊은 김홍도가 패기 있게 그린 작품을 들고 오자 스승 강세황이 이렇게 적어주었다. 봄날 새벽 과거 시험장의 분위기를 그린 단원의 ‘공원춘효도’다. 특이한 것은 시험장을 꽉 채운 집채 만한 우산들이다. 우산 살만 수십 개, 지름 3m는 족히 됨직한 커다란 우산 아래로 장정 대여섯이 웅크리고 있다. 비나 볕을 가리려는 우산이 아니다. 시험 감독관의 눈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가림막이다. 우산 안에 수험생을 비롯해 문장력과 글씨에 각각 능숙한 대리시험자들, 좋은 자리 선점하고자 고용된 덩치 좋은 사내, 몸종 등이 뒤엉켜있다. ‘난장판’이라는 단어가 시험장에서 나왔을 정도로 부정이 극심했던 당시 과거제를 해학적으로 꼬집는다. 그럼에도 강세황은 감상문 말미에 “묘사의 오묘함이 하늘의 조화 같으니 이 고통 겪어본 사람이 그림을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깊이 가슴 아플 것이다”고 적었다.
30대 젊은 김홍도 특유의 날카롭고 일관된 굵기의 필선이 돋보이는 이 작품이 추정가 4억~8억원으로 경매에 나온다. 오는 22일 서울옥션(063170) 강남센터에서 열리는 제157회 경매다. 이 유물은 지난 70년간 미국에 있었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근무하던 한 미군이 그림을 사서 미국으로 갔고, 이후 2005년에 또 다른 미국인 소장가가 구입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 경매를 계기로 국내 환수의 길이 트였다. 다양한 주제의 풍속화로 유명한 김홍도가 그린 유일한 과거시험장 그림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다. 한국 고고학계의 거두인 김원룡(1922~1993) 전 서울대 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로 재직하던 1952년 당시 이 그림을 검증한 확인서가 함께 전한다. 학계에서는 단원의 작품 여러 점이 하나의 병풍으로 제작됐다가 전쟁 이전에 분리돼 흩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8년 성균관대박물관 기획전 등 국내 전시에서도 선보인 적 있는 명품이다.
서울옥션은 이번 경매에 총 131점 약 93억원 규모의 작품을 내놓았다. 김홍도를 비롯한 조선의 대가, 근대 거장들의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끈다.
겸재 정선의 ‘초충도’ /사진제공=서울옥션
겸재 정선의 ‘초충도’는 붉은 여뀌꽃에 들러붙은 매미와 이를 쳐다보는 개구리를 담고 있다. 산수화로 유명한 겸재는 화훼·영모화에도 뛰어났으나 전하는 작품이 적다. 간송미술관이 비슷한 소재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투명한 매미 날개의 정교한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의 추정가는 4,000만~1억 원이다. 김환기가 1956년에 그려 파리 베네지트 화랑에서 개최한 개인전을 통해 공개했던 ‘내가 살던 곳’이 경매에 오른다. 이중섭의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박수근의 ‘그림 그리는 소녀들’, 도상봉의 ‘해운대 풍경’, 권옥연의 ‘여인’도 새 주인을 찾는다. 코로나로 침체된 올해 상반기 국내미술시장에서 낙찰총액 1위를 기록한 이우환 작품으로는 2007년 제작된 ‘대화(Dialogue)’ 등 8점이 나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김환기 ‘내가 살던 곳’ /사진제공=서울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