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이 가을, 윤선도의 유토피아 세연정서 詩 한수 읊어볼까

[청정의 섬 보길도]
윤선도 말년의 삶 간직한 세연정
산·물 함께 어우러진 풍광 뛰어나
둥근돌 깔린 공룡알해변도 가볼만

세연정은 지난 1994년 복원된 것으로 정자 앞에 판석보(굴뚝다리)로 물을 가둬 만든 세연지를 마주보며 서 있는데 산과 물과 함께 어우러진 풍광이 압권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음악의 천재라고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들이 멘델스존보다 뛰어난 음악가라고 할 수 없다. 러시아의 솔제니친이나 시인 이상도 문호(文豪)임에는 틀림없으나 윤선도에 비하면 어림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기자의 개인적인 가치 판단이니 굳이 동의를 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솔제니친과 이상은 한평생 가난과 고생으로 찌든 삶을 살았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악상과 문장은 고난과 환란 속에서 떠오르기 마련이다. 군 복무를 할 때 연애편지가 잘 써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런데 멘델스존이나 윤선도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다지도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고 시를 썼으니 그 재능은 타고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저 물려받은 재산으로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보낼 시간도 모자랐을 이들이 그렇게 엄청난 예술작품을 완성한 것은 천부적인 재능 덕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멘델스존이 태어난 독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이 판국에 찾아가 볼 수 없으니 대신 윤선도의 자취가 깃든 보길도를 다녀왔다.

1994년에 복원된 세연정의 아름다운 모습.

압개(앞바다)예 안개 것고 뒫뫼(뒷산)희 해 비췬다.

배 떠라 배 떠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江村) 온갓 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수국(水國)의 가을히 드니 고기마다 살져 읻다.

닫드러라 닫드러라.

만경딩파(萬頃澄波)의 슬카지 용여하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간(세상)을 도랴보니 머도록(멀수록) 더옥 됴타.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를 배경으로 한 단가 40수의 대부분을 바로 이곳 보길도 부용동 원림에서 지었다. 해남 윤씨인 윤선도가 말년을 이곳에서 보낸 것은 병자호란을 피해 제주로 피난하던 중 보길도의 풍광에 매료돼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윤선도는 보길도의 형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은 것에 착안해 마을 이름을 부용동이라 지었다.

고산은 섬의 주봉인 격자봉 밑에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짓고 그중 하나를 낙서재라고 이름 붙여 기거했다. 그는 85세에 삶을 마감하기까지 낙서재를 비롯해 세연정·무민당·곡수당·정성암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짓고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꾸민 후 보길도를 노래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의 유토피아 안에 있는 건물 가운데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세연정이다.

기자가 돌아본 이 산하의 조선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은 담양 소쇄원과 서울의 창덕궁인데 그 이유는 인공구조물과 자연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기자는 바로 이 세연정을 두 건물에 더하기로 했다. 세연정의 물아일체(物我一體) 또한 두 곳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동쪽의 작은 동산을 바라보고 있는 세연정은 고산연보에 따르면 윤선도가 보길도에 처음 들어온 1637년 지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세연정은 1994년 복원된 것으로 정자 앞에 판석보(굴뚝다리)로 물을 가둬 만든 세연지를 마주 보며 서 있는데 산과 물과 함께 어우러진 풍광이 압권이다.

그렇다고 이 그림 같은 풍광이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공룡알처럼 생긴 돌이 해변을 메우고 있는 보길도 남단의 공룡알해변.

유영인 보길면 윤선도유적팀장은 “세연지의 물을 가둬 놓은 판석보로 물이 들어가는 구멍은 다섯이지만 나가는 구멍은 세 개”라며 “이 같은 구조는 물을 깨끗이 하는 정화기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선도가 풍류만 즐긴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세연정을 포함해 부용동 일대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살림집으로 이용되던 낙서재 주변과 맞은편 산 중턱 조망대인 동천석실 주변 등이다. 이밖에 해안에 온통 둥근돌이 깔려 있는 공룡알해변도 들러볼 만하다. /글·사진(보길도)=우현석객원기자

◇보길도 맛집 ‘바위섬횟집’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맛집을 섭렵하는 와중에 스스로 세운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횟집은 맛집으로 소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생선회에는 특별한 손맛이랄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취재에서 그 원칙을 깨기로 했다. 참돔회는 다른 곳에서 먹었던 것보다 육질에 탄력이 있고 감칠맛이 있었다. 함께 나온 전복회도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는 식감이 뛰어났고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메뉴판에는 가격표 대신 시가라고만 표기돼 있는데 아마도 날마다 매입시세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탁월한 회맛이 완도군의 경쟁력인지, 보길도만의 경쟁력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지방과 다른 것은 확실하다.

보길도 참돔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