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 위약금까지 보전...폐기됐던 규제법안 무더기 재활용도[일하는 국회의 민낯]

코로나 틈 타 너도나도 퍼주기법...뒷감당 외면한 입법폭주
與 발의 기업규제법안 벌써 404건...국민의힘 보다 8배나
단어 하나 바꾼 꼼수입법·'소방견 위상강화' 황당법까지

국회 모습./연합뉴스

◇농부 인건비도 지원…축산업 종사자 역차별 논란 야기

규제정보포털과 의안정보시스템을 토대로 21대 국회 출범 100일 동안 국회의원들이 입법발의한 법안(3,317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법안이 1,005건에 달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농어민 등의 피해 대책을 세우는 법안 가운데 ‘지역구 챙기기’나 ‘표심’을 의식한 법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여행과 예식·외식·항공 등의 예약 취소로 인한 위약금 등 코로나19로 발생한 피해금액에 대해 각각 15%씩 종합소득산출세액에서 공제하는 내용이 포함된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예식장의 위약금까지 정부가 보전해주는 데 따른 소요재원 추계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해로 농작물 등을 다시 심는 경우 현재의 종묘 대금과 비료 대금 외에 그동안 투입된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을 보조·지원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의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농촌이 지역구인 신 의원이 농업에 한정된 법안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가축과 누에 등 축산 관련 피해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결국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축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같은 당 정정순 의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개정안을 통해 다자녀 직원에 대한 채용·승진·전보 등 인사관리상 우대를 실시하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다자녀 가정에 대한 수당 지원 방식이 아닌 채용에서부터 승진·전보까지 우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박재호 민주당 의원은 단순 법률 정비에 해당하는 관련 법 폐지안을 10건이나 발의했다. 또 서삼석 민주당 의원은 양식산업발전법을 ‘수산업·어촌발전기본법’으로 변경하는 이른바 ‘알법(알기 쉬운 법)’도 내놓았다. 이처럼 입법의 질적 하락 요인으로 지적돼온 ‘꼼수 법안’들이 21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여기에 176석을 가진 민주당이 선명성까지 앞세우며 20대 국회에서 폐지된 규제법안을 그대로 다시 살려 발의하는 예도 다반사다. 따라서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가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규제 왜 다시 꺼내나”

176석 거대 여당의 규제 드라이브가 예고된 것도 21대 국회 초반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3,317건의 법안 가운데 규제법안은 460건(13.8%)으로 분석됐다. 기업 규제법안을 가장 많이 쏟아낸 정당은 민주당이었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상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 404개(87.80%)로 압도적이었다. 49개를 발의한 국민의힘(10.69%) 대비 8배를 넘는 수치다. 규제법안을 가장 많이 쏟아낸 10위권 의원에도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거대 여당으로 선명성 경쟁이 규제입법을 늘린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다 규제입법에 나선 송옥주 의원의 경우 20대 때 같은 당 이용득 의원이 발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재활용했다. 해당 법은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근로복지공단의 직장복귀계획 수립 명령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조정식 의원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대·중소기업 상생 발전과 대·중소기업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이익을 공유하는 협력이익공유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앞선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폐기된 법안을 재활용한 사례다. 박용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51개 법안을 그대로 제출하기도 했다. 해당 의원실은 “입법에 성공하지 못한 법안을 새로운 임기 시작점에 다시 발의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계류된 원인을 해소하기도 전에 법안부터 발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4년 내내 계류되다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는 법안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19대 임기 100일 동안 제출된 법안 1,544건 중 858건(55.4%), 20대 1,995건 중 1,255건(62.9%)이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임기 종료 후 폐기됐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시대착오적으로 규제를 늘려갈 경우 결국에는 무효가 된다”며 “현실을 무시한 규제법안들이 통과되지 않고 임기와 함께 폐기되는 이유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적 쌓기용 쪼개기 법안 발의 악순환

21대 국회에서도 단어 하나만 바꿔 발의하는 꼼수 법안 역시 적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소방견의 위상을 강화한다”며 인명구조견으로 돼 있는 ‘소방견’의 명칭을 ‘119구조견’으로 변경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또 다른 의원도 “사방사업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사방협회’의 명칭을 ‘한국치산복원기술협회’로 변경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른바 ‘자구수정’파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도 ‘국위선양을 위한 체육 분야 우수자’를 ‘국민의 행복과 자긍심 고취에 기여한 체육 분야 우수자’로 변경한 병역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관계자는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어려운 용어를 순화해서 푸는 입법발의 형태를 ‘알기 쉬운 법’의 줄임말로 ‘알법’이라고 부른다”며 “‘일괄 법률정비 특별법’ 같은 법안을 통해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데 실적 쌓기 대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송종호·박진용·김인엽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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