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만한 재정 준칙이 없다 보니 예산안 발표가 다가오거나 추경 편성의 조짐이 감지되면 채권시장은 번번이 요동친다.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인 555조8,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한 지난 1일 국고채 3년물은 전일 대비 3.7bp(1bp=0.01%) 오른 0.977%, 국고채 10년물은 전일 대비 6.6bp 오른 1.582%, 국고채 30년물은 전일 대비 5.9bp 오른 1.722%를 기록했다. 3년물은 지난 4월 말, 10년물과 30년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증시가 급락한 3월 말 이후 최고치다. 국고채 총 발행 규모는 시장 예상보다 10조원가량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산안에 시장이 요동을 친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내년도 예산안 발표가 다가오며 외국인이 선제적인 국채 선물 매도세에 나선 점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3년 국채 선물을 5조8,042억원, 10년 국채 선물은 3조1,715억원어치 순매도했다. 현 정부의 재정에 대한 신뢰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 업계의 평가다. 김지영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물가목표제 변경에 따른 미국 국채 금리 추가 상승 우려도 있지만 국고채 공급 물량 증가에 대한 경계감 등이 외국인 선물 매도의 주요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내년 국채 발행 규모에 압박을 받은 채권시장은 10일 정부가 국채조달분 7조5,000억원을 포함한 총 7조8,000억원의 규모의 4차 추경안을 발표하며 휘청였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23년까지 정부 지출은 늘어나고 세수입은 감소가 예상되면서 국채 발행 증가 기조가 이어질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당정이 원금보장 효과를 강조하며 내놓은 정책금융(뉴딜펀드)은 구축 효과를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고채 발행이 증가한 상황에서 매년 4조원 규모의 뉴딜펀드는 대규모 국고채 발행에 따른 민간 부문 채권의 수요 구축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부담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기관은 공공부채 확대로 인한 구축 효과 발생을 경고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 높은 수준의 공공부채는 민간투자를 구축하고 부채상환을 위해 왜곡적 조세를 부과할 유인을 높여 경제의 잠재성장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재정규율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