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그들은 어쩌다 괴물이 되었나

정민정 논설위원
타인의 기회 빼앗고 권리 짓밟고도
비판 목소리 적폐로 모는 치졸함까지
진보진영 '내로남불' 갈수록 도 넘어
괴물 닮아가는 모습 똑바로 마주해야


10만명이 운집한 잠실 주경기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갑작스러운 정적에 관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경기장 귀퉁이에 모습을 드러낸 소년이 은빛 굴렁쇠를 굴리며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전 세계인의 소리 없는 응원 속 목적지에 도착한 소년은 굴렁쇠를 어깨에 걸치고 손을 흔들었고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꼭 32년 전인 지난 1988년 9월17일 잠실 주경기장, ‘벽을 넘어서-화합과 전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역사적인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1988년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했고 10% 이상의 가파른 경제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000달러 달성 등 경제적 성취를 이뤘다.


화려한 경제 성적표만큼이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거셌다.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 숨을 죽이던 민주화의 몸짓은 1987년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했고 올림픽을 기점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열사를 가슴에 묻은 청년들은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거리로 뛰쳐나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다. 독재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전진하던 순간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사회가 권력의 중심으로 진입하면서 이들은 정치권 곳곳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40대 기수론’은 거대한 흐름이었다. 당시 부상한 386세대의 지배적 위치는 20년이 흐른 지금 절정에 달하며 어느 세대도 대체할 수 없는 견고한 성(城)이 됐다. 아마도 민주화에 청춘을 바친 이들은 자신이 만들 세상만큼은 이전 세상과는 다를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70년대 학번이나 발자취를 좇았던 90년대 학번 역시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민주화 세대가 주류를 차지하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던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2020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공정’과 ‘정의’에 목말라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 윤미향·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 등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같이 정의를 부르짖었던 진보진영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역린이나 마찬가지인 병역·입시 문제를 건드렸을 뿐만 아니라 쏟아지는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변명에 급급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자기 진영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면 되레 적폐로 몰아세우는 치졸함마저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력자의 딸에게 기회를 박탈당한 학생, ‘앵벌이’에 동원된 위안부 할머니들, 인권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비서, 공익제보를 이유로 인격 살인을 당하고 있는 젊은이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안위와 명예를 걱정하며 내년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판알을 튀기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던 홍영표 의원이 16일 “쿠데타 세력이 국회에서 정치 공작을 하고 있다”며 ‘쿠데타’까지 운운하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미국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민주주의 체제의 붕괴’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민주주의를 구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고 설파했다. 혹시 스스로 민주주의자라 확신하고 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자신의 손으로 일궜다고 자신한다면 지금 당장 거울을 보라. 대의를 내세워 누군가 마땅히 누려야 할 기회를 빼앗고 권리를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증오했던 괴물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라. 괴물을 몰아낸 이 세상에 또 다른 괴물을 들여놓기 위해 그 추운 겨울날 수백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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