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병원에 붙은 독감(인플루엔자) 예방접종 관련 안내문. /연합뉴스
2차 재난지원금 논란에 ‘전 국민 무료 독감 백신 예방접종’이 정치권 협상 테이블에 올랐지만 정작 백신 제조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17일 백신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 유통되는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은 이미 생산이 끝난 상태다. 병·의원 공급과 유통 단계에 접어들며 지금 추가분을 생산한다고 해도 올겨울 안에 공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개 독감 백신은 연초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올해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는 독감 바이러스를 발표하면 3월께 생산에 착수한다. 이후 8월까지 생산을 마친 뒤 시판 전 마지막 품질을 확인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가출하승인을 거쳐 시중에 유통된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독감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되는 9월 이전에는 모든 생산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국내에서 독감 백신을 생산하는 방식은 유정란 배양과 세포 배양으로 나뉘는데, 이 중 유정란을 이용한 백신 생산은 제조에서 품질 검증까지 약 6개월이 걸린다. 유정란 방식보다 생산 기간이 짧다는 세포배양 방식도 3∼4개월은 필요하다. 지금 당장 생산하더라도 내년 1월이나 돼야 추가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만이 세포배양 방식으로 독감 백신을 생산하는데, SK바이오사이언스는 다국적제약사로부터 주문받은 코로나19 백신 생산 계획도 잡혀 있어 생산 일정을 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백신 업계 관계자들은 전 국민에게 독감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느냐 마느냐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방역당국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백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전 국민 독감 백신 접종’을 놓고 예산안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산이 안 되므로 불가능한 얘기”라며 “이미 올해 독감 백신 생산이 마무리되고 포장까지 끝났으므로 지금 생산한다고 해도 올가을, 겨울 안에는 공급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에 대비해 무료 접종 대상자는 반드시 독감 백신을 접종하라고 권하고 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독감 백신도 지난해까지는 독감 바이러스 3종(A형 2종·B형 1종)을 예방할 수 있는 3가 백신이었으나 올해부터는 4종(A형 2종·B형 2종)을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국내 백신 업체 역시 4가 백신 위주로 유통하고 있다. 무료 접종 대상자 외에 당뇨병이나 폐 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거나 집단시설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가급적 독감 백신을 맞는 게 좋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밝힌 올해 국내 독감 백신 생산량은 약 3,000만명 분량이다. 지난해보다 약 20% 증가했다. 이 중 무료 접종 대상자는 18세 미만 소아·청소년과 임신부, 만 62세 이상 노인 등 1,900만명 정도다.
한편 전 국민 무료 독감 예방접종안을 두고 여야는 필요한 예산부터 접종 대상, 백신 추가 생산 가능 여부까지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전날 전 국민 독감 예방접종에 필요한 예산에 대해 “1000억원 안팎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예결위원인 박용진 의원은 “1조원 가까운 돈이 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기자 slypd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