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9월 18일. 미국 국방부와 공군, 중앙정보국(CIA)의 생일이다. 출범 시기가 동일한 이유는 같은 법률, 국가안전보장법에 근거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처음 도입된 공군 1호기에서 이 법안에 서명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공군의 독립을 비롯한 새로운 안보 시스템의 출현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었다.
국가안전보장법의 골자는 국방부 신설. 독립전쟁 이래 국방부의 기능을 맡아온 전쟁성이 육군성으로 바뀌었다. 1907년 출범한 육군 항공대도 공군성과 공군으로 다시 태어났다. 전쟁성 대신에 생긴 기구가 연방군사편제국(NME). NME는 1949년 명칭을 국방부(DOD)로 개명해 오늘에 이른다. 전략정보국(OSS) 등 군 첩보부대들을 민간정보기관인 CIA로 통합한 것도 이때다. CIA는 미국의 상설정보기관으로는 최초. 정보 기능을 그만큼 중하게 여겼다.
해병대도 개별 군(軍)으로 인정받았으되 행정적으로는 해군성 산하 군대로 분류됐다. 육군성과 해군성, 공군성의 수장은 장관이라는 직명을 유지했으나 서열은 국방부 부장관(차관) 아래에 뒀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모두 승리한 세계 최강국 미국이 안보 체계를 대폭 개편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군별 이기주의를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육군은 해군을 여객선을 대주는 수송부대 정도로 여겼다. 해군도 독자적인 전투 수행을 위해 함대와 항공대 확충, 10개 해병사단 확보에 목을 맸다.
두 번째 이유는 소련과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인프라 구축. 종전으로 국방비와 군대 축소 압박을 받는 와중에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국가 전력을 개편할 필요가 커졌다. 막상 국가안전보장법은 순탄치 않았다. 각 군 간 알력이 남아 있는데다 의회는 국방예산을 대폭 깎았다. 미군의 고민은 바로 없어졌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국방예산이 해마다 늘어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아시아에서 포화가 멎으면 중동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날 때마다 재고 군수품이 소진되며 방산기업들의 매출과 이익도 뛰었다. 지금도 이런 구조는 여전하다. 미국이 냉전 초입에 마련한 국가안전보장법은 부분적 개정을 거쳤을 뿐 아직도 그 틀은 유지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우주군이 신설됐다는 정도가 변화의 전부다. 지구촌이 냉전 시대의 군사적 대결 구조 아래 싸움의 영역을 대기권 넘어 우주로 확장하는 모양새다. 인간의 본성은 정말로 전투적인가 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