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담] 청와대까지 탈탈 턴 최재형 감사원의 패기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감사원 "어린이날 文영상 용역 국가계약법 위반"
국민소통특위 '활동 0', 일자리위 '면접기회 부당'
비상근 위원장들은 근거없이 수천만~수억원 수령
崔 의지로 靑정기감사 부활 및 檢·국정원 첫 감사
"감사 사각지대 없애고 권력기관의 책임성 확보"
'탈원전 사퇴 압박' 관련 정치적 확대 해석은 경계

최재형 감사원장. /연합뉴스

지난 17일 감사원의 청와대 기관정기감사 결과가 여러모로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청와대가 국가계약법을 위반했다거나 대통령 직속 위원장·부위원장들에게 편법으로 월급을 줬다는 등의 감사원 지적 내용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그 전에 감사원이 대통령 자문위원회까지 포함해 청와대를 속속들이 감사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여론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청와대 정기기관감사를 15년 만에 부활시킨 것도, 이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까지 확대한 것도 모두 최재형 감사원장의 소신과 원칙·의지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 때문에 “감사 사각지대를 없애고 권력기관의 책임성을 확보하겠다”는 그의 취임 직후 일성도 새삼 다시 회자됐다. 다만 최 원장이 최근 월성원전 1호기 감사를 두고 사퇴 압박을 받을 만큼 현 정권과 갈등을 빚고 있어 청와대와 감사원 모두 이번 감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데는 서둘러 선을 그었다. <관련기사> ▶[국정농담] 탈원전 태클 걸면 감사원장도 '윤석열行'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4월29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어린이날 기념 영상메시지를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 “靑, 어린이날 영상 용역 국가계약법 위반”

17일 감사원은 지난 6월8일부터 같은 달 26일까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와 정책기획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국가균형발전위원회·일자리위원회 등 4개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를 대상으로 기관정기감사를 진행한 결과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감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무엇보다 청와대가 어린이날 ‘청와대 랜선 특별초청’ 영상 제작 용역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의 영상을 먼저 납품받고 계약은 나중에 체결한 비위가 눈에 띄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은 지난 4월 A업체에 5,535만원짜리 어린이날 영상 제작 용역을 발주하고 같은 달 30일에서야 A업체를 포함한 2개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제출받았다. 이후 최종 성과물이 이미 납품된 시기인 5월4일 A업체와 용역 계약을 사후적으로 체결했다. 청와대는 계약서에 허위 계약기간을 적고 6월1일 이 업체에 용역대금 5,000만원을 집행했다.

감사원은 이를 국가계약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감사원은 “대통령비서실은 용역을 수행할 후보 업체 조사 및 가격 시담을 통한 견적 금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사전 검토도 하지 못하고 사후 계약을 체결하는 등 국가계약법 제11조를 위반하는 등 계약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어린이날 행사를 기존 청와대 초청 방식에서 온라인 동영상 제작·배포 방식으로 변경하는 최종 의사 결정이 어린이날에 임박해 확정됨에 따라 촉박한 일정 속에 행정 처리가 미흡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 등 조치를 실시하겠다”고 해명했다.

이밖에 대통령경호처 직원 4명이 소속 부서장의 결재나 별도 근무상황 기록 없이 외부 강의에 나간 일도 있었다. 대통령경호처가 2007년 총액인건비제를 도입하면서 하위직급 15명을 상위직급 정원으로 조정한 가운데 이에 대해 구체적인 직급조정 정비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점, 대통령비서실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이력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관리하지 않는 점도 시정 조치해야 할 사안으로 지적됐다. 감사원은 다만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측근이 설립한 신생 공연기획사가 청와대 관련 용역을 수주한 건은 이번 감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국민소통특위 활동 ‘0’... 일자리위는 25명 면접 기회 부당 박탈

이번 감사의 최대 특징은 그간 사각지대에 있던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들까지 감사 대상에 올린 점이었다. 감사원 결과로 드러난 자문위원회들의 운영 실태는 국가 운영의 세밀한 판단을 기대한 일반 국민 상식과는 상당히 멀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국가균형발전위는 2018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스물일곱 차례 전문위원회 회의를 열면서 열다섯 차례 회의에 대해서는 관련 부처 국장급 이상 당연직 위원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도 통보하지 않거나 일부에게만 통보했다. 민간전문가인 위촉직 위원들을 중심으로만 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지역혁신·마을공동체, 교육·복지, 문화·관광 전문위원회의 경우 아예 부처 공무원들이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정족수도 채우지 못한 채 안건을 의결한 회의만 열한 차례에 달했다.

심지어 국가균형발전위가 만든 국민소통특별위원회는 지난해 10월 347명의 위원을 위촉하고도 지금까지 분과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한 채 한 번도 회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에 “지역 현안 수렴이라는 국민소통특별위원회의 활동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위원 위촉 등 위원회 구성 및 관리를 위한 행정력만 소모했다”고 지적하며 “국민소통특별위원회를 폐지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일자리위원회는 ‘연령 기준’을 앞세워 무기계약직 25명의 면접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했다. 구체적으로는 2017~2018년 네 차례 무기계약직을 채용하면서 서류전형 과정에 채용공고에는 없던 연령 기준(35~50세)을 추가했다. 이로 인해 4명이 위법한 연령차별로 면접 기회를 빼앗겼다. 2018년 4월 비서직을 채용하면서는 ‘청년 우대’ 조건을 갑자기 내거는 바람에 3명이 응시 자격을 갖추고도 35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인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사진제공=광주광역시

비상근 위원장들 근거없이 꼬박꼬박 월급... 수억원까지 수령

법령에 비상근으로 명시된 위원장·부위원장들은 별다른 기준도 없이 수천만~수억원을 급여처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사노위와 일자리위는 문성현 위원장과 이용섭·이목희 전 부위원장에게 2억1,000만원, 5,500만원, 1억4,000만원씩을 사례금 명목으로 줬고 균형발전위는 송재호 전 위원장에게 매달 400만원씩 총 5,200만원을 자문료 명목으로 지급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실제로 전 일자리위 부위원장인 이용섭 현 광주시장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 비상경제대책단장을 맡았고, 이목희 전 부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 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또 균형발전위원장 출신인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제주시갑)은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의 자문기구인 국민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단지 대통령 측근이라서 이유 없는 거액의 자문료를 지급한 것이라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공개된 감사보고서에 있듯이 법령상 비상임이지만 사실상 상근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점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월정의 자문료를 지급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위원회에서 감사원 감사결과 바탕으로 세부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몇몇 위원회는 이미 시정했다”고 답했다.

청와대. /연합뉴스

최재형 취임 후 靑·檢·국정원 감사... “권력기관 책임성 확보”

청와대가 늘 감사원의 기관정기감사 대상이 돼 왔던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3년부터 최 원장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15년간 감사원 기관운영감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가 감사 대상으로 부활한 건 최 원장 취임 직후인 2018년부터였다. 최 원장은 2018년 3월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감사 사각으로 여겼던 분야에 감사를 강화하고 공직사회에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겠다”며 청와대에 검찰청, 국가정보원을 기관운영감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검찰청에 대한 직접 감사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국정원 역시 지난 2004년 김선일 피살 사건에 한해 감사를 받은 것을 제외하면 기관운영감사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최 원장은 당시 “법령에서 인정한 각 기관의 특수성 때문에 감사에 어느 정도 제약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감사원에 주어진 권한 내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감사를 수행할 것”이라며 “이번 감사는 권력기관의 책임성을 확보하고 적법하고 투명한 국정운영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주 월성 원전 1호기. /연합뉴스

감사원, 정치적 해석은 적극 경계

일각에선 이번 감사를 최 원장과 청와대·여권 간 갈등 구도와 연계해 해석하기도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불리한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의혹으로 최 원장이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을 강하게 받는 상태인 점을 고려한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여권 인사들은 그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논란이 번지면서 해당 감사에 대한 결론은 예정 기한을 벌써 7개월이나 넘겼다.

하지만 감사원은 정치적 해석을 강하게 경계했다. 감사원은 지난 18일 입장자료를 내고 “대통령비서실 등에 대한 기관정기감사는 전혀 이례적인 게 아니다”라며 “이번 감사를 다른 감사 사항과 연관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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