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대화 실패는 투쟁 안 했기 때문이라는 민주노총

본지 ‘비대위 평가 문건’ 입수
비대위 “투쟁 - 교섭 연계 못해
사회적 대화 합의문 추인 좌초”
하반기 투쟁 노선 강화 계획
내부선 “코로나 와중에…”비판

민주노총이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8.15 노동자대회 성사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허진 기자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가 노사정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합의문을 추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투쟁이 빠졌고 합의를 추진하는 과정이 독단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의 합의문 서명식 불참과 합의문 추인 부결 등의 진통으로 결국 반쪽짜리 합의에 그쳤다. 특히 민주노총 비대위는 “하반기 민주노총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노동개악 저지 투쟁 과제를 앞에 두고 있어 조직정비와 함께 투쟁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와 노동시장이 악화한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 반쪽 합의의 책임을 대화에 무게를 둔 김명환 집행부 탓으로 돌리고 하반기에 또다시 투쟁에 나설 것임을 재천명한 것이다. 18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민주노총 비대위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평가’라는 내부 문건에 따르면 비대위는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하반기 투쟁 방향을 제시했다. 비대위는 이 문건을 지난 17일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 제출했다. 비대위는 7월 김 전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 합의문을 추인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구성됐다. 비대위 출범과 함께 사회적 대화에 유화적인 간부들이 사퇴하면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강성 성향이 뚜렷해졌다.

비대위는 평가 문건에서 김명환 전 집행부가 투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사회적 대화 기간 중에 계속된 정부의 대책에서 노동자 보호 및 고용 유지·확대에 계속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고 국회에 고용보험·국제노동기구(ILO) 법안 등 논란이 많은 법안이 상정됐지만 제대로 된 투쟁과 교섭과의 연계 전술 운용을 하지 않았다”며 “투쟁 실종 흐름으로 인해 조직 내부에서 집행부의 운동 노선에 대한 문제 제기로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평가 문건에서 합의문 추인을 위해 김 전 위원장이 직권으로 소집한 대의원대회에 대해서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 형식으로 개최됐던 대의원대회는 적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이 대의원에게 합의문 추인을 독려하기 위해 꺼냈던 ‘정파’ 문제에 대해 비대위는 “단순히 집행부에 반대하는 수준의 행동을 정파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 비대위의 향후 결론은 ‘투쟁’이었다. 비대위는 ‘이후의 사회적 대화 과제 평가’라는 항목에서 “사회적 대화를 포함한 민주노총의 교섭전략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면서 “하반기 민주노총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전태일 3법 입법 발의를 통한 쟁취 투쟁, 노동개악 저지 투쟁 등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있어 조직정비와 함께 새롭게 투쟁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주노총은 발칵 뒤집혔다. 사회적 대화에 찬성하는 중앙집행위 위원들이 평가 문건의 편파성을 지적하며 토론을 요청했고 중앙집행위 오전 시간을 모두 평가 문건 토론에 할애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비대위의 투쟁 계획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정이 함께 모여 사회적 대화를 하면 민주노총의 요구만 100% 관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해고 금지’ 조항 등이 명문화되지 않았다고 사회적 대화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제1 노총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한 중앙집행위원은 “비대위 출범 이후 사회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평가 문건도 너무 일방적”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중앙집행위는 평가문을 추인하지 못했다. 이견이 많은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토론을 이어가기로 했다.


민주노총 비대위의 활동시한은 위원장 등 차기 집행부가 선출될 때까지다. 민주노총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만큼 임기가 석 달 정도 남은 셈이다.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이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노총을 사실상 ‘패싱’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14일 취임 인사를 위해 한국노총을 찾았지만 민주노총 방문 일정은 잡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때문에 앞으로 비대위의 활동은 장외 투쟁 일변도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파업·시위 등 투쟁을 한다고 해도 조직 내홍이 수습되지 않고 있어 추진 동력이 붙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광복절 집회를 준비할 때도 보건의료노조·여성노조에서 “자가격리를 2주만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월급 절반이 날아가는 셈”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민주노총의 내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전문가들은 차기 집행부가 선출돼도 민주노총이 교섭과 투쟁 사이에서 적당한 노선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이 근본적으로 향후 노사관계 방향을 새롭게 가져갈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내홍은 내년까지 계속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민주노총이 과거에 해왔던 집회 방식이 유효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투쟁은 세련돼야 하고 교섭은 불가피하다. 민주노총이 새로운 목표를 구체화하지 않으면 논쟁만 반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변재현·방진혁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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