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리비아 내전과 관련한 유엔의 보고서 하나가 국제 외교가를 뒤흔들었다. 유엔이 대외비로 작성한 보고서는 2018년 10월 이후 1,000여명의 러시아 용병들이 반군인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을 도와 유엔의 지원을 받는 리비아통합정부(GNA)에 맞서고 있다고 못 박았다. 러시아 용병들은 단순한 기술 자문에서 벗어나 저격수 배치, 포격 지원 등 전투활동에도 적극 참가했다고 한다.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졌던 바그너그룹의 실체를 국제기구에서 공식 인정한 셈이었다.
바그너그룹은 2010년대 초반에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의 드미트리 우트킨이 창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너는 우트킨의 군대 시절 호출 부호로 아돌프 히틀러가 좋아했던 독일 음악가 이름에서 따왔다. 최대 1만여명으로 파악되는 조직원들은 주로 전직 러시아 군인들로 구성돼 있지만 벨라루스·세르비아·우크라이나 출신들도 적지 않다. 세간의 관심은 조직의 실소유주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사업가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라는 점이다. 프리고진은 ‘푸틴의 셰프’로 불릴 만큼 푸틴의 뜻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혐의로 미 재무부의 제재 명단에 올랐다.
바그너그룹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때였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 편에 서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시리아 내전을 비롯해 아프리카 수단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금 지원, 군사활동 등을 통해 친러 정권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당국은 부인하고 있지만 서방에 맞서 러시아의 영향권을 확대하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바그너그룹의 조직원들이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벨라루스에 침투해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러시아는 과거 우크라이나 침투 직전에도 용병을 파견한 적이 있다. 이런 와중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최근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군사·경제적 지원을 약속받았다. 러시아의 이익을 앞세운 바그너그룹이 벨라루스의 민주화를 방해하기 위해 어떤 공작을 벌일지 걱정이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