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정부가 독감 예방접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22일 서울 시내 한 병원의 예방 접종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승현기자
정부는 일단 접종이 보류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500만명분에 대해 약 2주간 품질검사를 실시한 후 순차적으로 공급을 재개할 계획이다. 방역당국은 검사가 진행 중이라도 안전성이 검증된 물량은 즉시 공급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상온 노출로 인해 백신에서 안전성에 문제가 발견되면 올해 독감 접종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 동시 유행 차단에 주력해오던 정부의 방역대응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청은 22일 독감 백신 접종 일정이 전면 중단된 데 대해 “약 2주간의 품질검사 실시 후 안전성에 문제없음이 확인되면 만 13~18세에 대한 접종을 재개하겠다”면서 “이후 품질 확인 및 물량이 확보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13~18세 접종을 시작으로 다음달 중학생·초등학생 등에 대한 집중접종 계획을 세웠지만 독감 백신 수급 상황에 따라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다. 다만 정부는 다음달 13일부터 시작하기로 한 62세 이상 고령층 예방접종은 최대한 일정에 차질없이 진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비록 공급 과정에 문제가 생겼지만 올해 독감 백신 사업 시작일을 전년에 비해 한 달가량 앞당겨 시작한 만큼 큰 무리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역시 문제가 된 독감 백신에 대해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지 판단한 뒤에 (폐기 여부를)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500만명분 중 문제가 있는 백신은 폐기하되 안전성이 입증된 백신은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조사 결과에 따라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방역당국의 기대와 달리 상온에 노출된 독감 백신의 오염도가 심각할 경우다. 만약 백신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돼 많은 양을 폐기해야 할 경우 당장 재생산에 돌입한다고 해도 내년 2~3월에나 공급이 가능하다. 상온에 노출됐던 백신들 중 어느 정도 물량이 폐기되느냐에 따라 트윈데믹 방역 시스템이 큰 영향을 받게 된 상황이다.
당장 인플루엔자 유행 시기인 11월이 다가오고 있어 시간은 많지 않다. 지난해의 경우 11월 중순께에 인플루엔자 주의보가 내려졌던 만큼 올해도 그즈음부터 유행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예방접종을 하고 면역이 생기는 데는 2주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11월 초까지는 접종을 하는 게 좋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인플루엔자는 코로나19와 같이 사실상 처음 유행의 시작은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경로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지난 상반기 중에 남반구의 주요 국가들에서 인플루엔자 유행이 매우 낮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북반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인플루엔자 유행이 거리두기라든지 여러 가지 노력 덕분에 예년보다 높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부터 시작된 2회 접종 어린이 대상자에게 공급된 백신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문제기에 대해 정부는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청장은 “8일부터 9세 미만 아이들 중에 두 번 접종을 해야 되는 대상자가 먼저 예방 접종을 시작했다”면서 “현재까지 11만8,000명 정도가 예방접종을 시행 받았지만 아직까지 이상 반응이 있다고 신고된 건수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무료 접종에 대한 신뢰성 의문이 제기되면서 유료 접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유료 백신 예방접종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 유료 접종의 경우 민간 의료기관이 개별로 구매해 공급받은 백신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과는 다른 경로로 공급된 물량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공급하기로 한 3,000만명분 중에서 500만명 분량이 폐기되면 2,500만명 분량밖에 남지 않게 된다”면서 “물량이 부족한데다 무료 접종에 대한 신뢰도 추락하면서 3만~5만원에 달하는 유료 백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