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CO㈜더콘텐츠온 제공
뻔하게 웃길 바엔 제대로 병맛을 보여주겠다는 작정인 것 같다. B급 감성으로 인해 취향은 조금 탈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하이브리드형 복합 장르 영화가 탄생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 다소 쌈마이(?)스러운 액션과 예측불허한 전개로 한 편의 흥미로운 소동극을 만들어냈다.
신혼 생활에 한창인 소희(이정현)은 하루 21시간 쉬지 않고 활동하는 남편 만길(김성오)의 외도를 의심해 흥신소에 조사를 의뢰하게 된다. 그러나 남편의 행각은 결국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임을 알게 되고, 고등학교 동창인 세라(서영희)와 양선(이미도), 흥신소 소장 닥터 장(양동근)과 힘을 합쳐 남편 죽이기 작전에 나선다. 결국 만길의 정체가 지구를 차지하러 온 외계인 언브레이커블임이 밝혀지게 되고, 여기에 정부 요원까지 합세하게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커져만 간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소동을 담은 영화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상황에 상황이 더해지는 아이러니함의 연속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맥락없는 이야기에 ‘이게 무슨 이야기지?’라며 당황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기묘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놓여있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대폭소를 터뜨리지는 않지만 러닝타임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장르의 복합은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온다. 코믹과 스릴러가 접목된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SF와 호러, 액션까지 가미했다. 외계 생명체의 등장은 SF 요소를 나타내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대결은 스릴러와 호러적인 색채를 그린다. 후반부 추격전과 정부 요원의 결전은 서스펜스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스펙터클한 액션까지 더해졌다. 자칫 과할 수 있는 복합 장르는 오히려 대놓고 ‘투 머치함’을 드러내 B급 정서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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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의 장점은 캐릭터다”라는 신정원 감독의 자부심처럼 영화의 캐릭터들은 살아 숨 쉰다. 외계 생명체 언브레이커블 만길은 주유소에서 경유를 들이켜고, 고량주 40병을 한 번에 해치우고, 21시간 연속 여자들을 만나는 등의 설정으로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또 언브레이커블의 정체를 추적하는 닥터 장은 고압의 전기에 감전되고, 교통사고가 나도 죽지 않는, 이미 죽었어도 무방한 ‘빌런’으로 그려져 웃음 포인트를 자극한다.
엉뚱하고 괴상한 블랙유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캐릭터들에 대한 신 감독의 깊이 있는 애정이 묻어나온다. 캐릭터들의 여정이 순조롭지 않지만, 관객들이 어느새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에 동조하게 만드는 힘은 신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노련하게 살리는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 양동근, 이미도의 연기 대결도 볼만하다. 특히 언브레이커블을 연기한 김성오, 여고 3인방 중 사투리를 찰지게 구사하는 이미도의 존재감이 눈에 띈다. 또 이 두 사람을 능가하는 ‘닥터 장’ 양동근이 진정한 웃음 빌런이다. 극 중 ‘초등학교 어디 나오셨어요?’라고 주절거리는 그의 대사는 영화의 명대사로 꼽을 수 있겠다.
맥락 없는 전개지만 배우들의 코믹 열연과 ‘코미디의 귀재’ 장항준 감독의 탄탄한 시나리오, 신정원 감독의 연출 뚝심이 묻어나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다. 최근 코미디 영화의 갈증이 있던 관객에게는 시원하게 터지는, 단비 같은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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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