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조속히 출범" 한마디에 공수처법 밀어붙여…헌재판결 기다려야

■與 공수처법 개정안 기습상정
백혜련 위원장 거수 표결 부치며
법사위 상정 이틀만에 강행 처리
내년 1월1일 출범 목표 속도 높여
野 "또 날치기, 이게 협치냐" 반발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고위공직자수사처법 개정안을 기습상정한 뒤 김도읍(오른쪽) 국민의힘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자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이야기 좀 하자”며 회의장으로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75석 거대 여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통과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속한 출범”을 언급한 지 이틀 만이다.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곧 추천하겠다고 했지만 문 대통령 한마디에 ‘빠르고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공수처법 위헌 가능성에 헌법소원까지 제기된 상황이지만 헌재 결정 전에 일사천리로 완결짓겠다는 집권여당의 ‘오만’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여당은 늦어도 오는 11월 중 공수처장을 임명해 내년 1월1일 공수처를 출범시킬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를 열어 예정에 없던 고위공직자수사처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했다. 지난 21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한 지 이틀 만이다. 1소위 여야 위원들이 ‘검찰 개혁안’을 놓고 논의를 하던 도중 민주당 소속 백혜련 소위 위원장이 “김용민 의원 안을 상정하겠다”고 긴급 제안, 이를 ‘거수 표결’에 부쳤다. 여야 간사 간 협의도 건너뛴 신속한 결정이었다. 야당은 거칠게 항의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이게 협치냐”고 비판했고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도 “또 날치기냐”며 반발했다. 법사위 1소위는 민주당 5명, 국민의힘 3명으로 민주당이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손쓸 겨를 없이 법안 통과를 바라만 봐야 하는 형편이다.


김용민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장 추천 시 야당의 ‘비토권(거부권)’을 사실상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시에 공수처 검사 자격으로 기존 ‘10년 이상 변호사 자격’을 ‘5년 이상 변호사 자격’으로 대폭 완화하고 7년 임기에 연임제한도 없애 민변 출신 등의 공수처 검사 진입을 용이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한마디’에 속도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21일 문 대통령은 ‘제2차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조속히 출범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당정청이 합심하고 공수처장 추천 등 야당과의 협력에도 힘을 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공수처 출범을 두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1년 7개월 만에 직접 권력기관 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한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민주당이 총력전에 나선 셈이다. 이미 이날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에 반드시 공수처를 구성해 고위공직자 범죄를 철저히 수사함으로써 민주주의 완성에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던 것과 달리 강한 자세로 나왔다. 같은 자리에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법대로라면 7월15일 공수처가 출범됐어야 했는데 두 달째 추천위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법에 정해진 야당 몫 추천을 거부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수처를 위법 상태로 계속 방치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라며 “무한정 공수처 출범을 지체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우리 당은 야당의 요구도 수용했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국민의힘을 향해 경고했다.

당초 민주당은 ‘의석수’로만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판단으로 강온작전을 펴왔다. 20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을 통해 국민의힘을 패싱하고 만든 공수처 법안을 또다시 단독 처리할 경우 국회는 기약 없는 파행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양보하는 모양새로 최대한 설득하겠다는 당내 기류가 강했다. 최근 김 원내대표가 “공수처 설치와 특별감찰관 후보를 동시 추진하자”며 야당 입장을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특별감찰관 추천 마무리 후에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추천하겠다”고 맞받으면서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백 의원까지 개정안을 내놓으며 야당에 대한 압박에 무게를 좀 더 싣는 모습을 보였지만 당론을 확정하지 않은 채 강온작전을 펴왔다. 그랬던 민주당이 문 대통령 말 한마디에 당장 급한 4차 추경을 야당의 협조를 받아 통과시키자마자 얼굴색을 바꾼 셈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공수처장 추천위 구성은 정기국회 안에 마무리 짓는 게 목표”라며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끝까지 추천하지 않을 경우 개정안 단독 통과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송종호·임지훈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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