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였나? 홀로 선 자본주의, 진화가 필요하다

■[책꽂이]홀로 선 자본주의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세종 펴냄
불평등 연구 분야 석학의 위기 해법
냉전 끝나며 자본주의 승리했지만
자본소득·노동소득 모두 쏠림 심화
공교육 질 높이고, 부자 증세 필요
부자 엘리트들의 정치 통제 막아야


대립은 갈등의 원천인 동시에 발전의 동력이다. 개인이든 사회, 국가든 경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홀로 선 존재에게는 이런 대립도, 경쟁을 통한 발전도 허용되지 않는다. 제자리걸음이라도 한다지만 외부 환경이 앞을 향해 변화하는 경우에는 결국 상대적으로 뒤처지게 된다.

사상이나 체제도 마찬가지다. 반대편에 존재하는 사상과 체제는 엄정한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자기 성찰의 거울 역할을 한다. 성찰이 통해서만 잘못된 점을 깨닫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어떠한가. 자본주의는 30년 전 냉전이 끝난 뒤 홀로 섰다. 당시 이는 ‘역사의 종언’이었고, 세상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외쳤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 경제 석학들은 그것이 마냥 축배를 들 일이 아니었다고 앞다퉈 한탄하며 저마다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불평등 분야의 권위 있는 학자인 블랑코 밀라노비치도 그 중 한 명이다. 밀라노비치는 저서 ‘홀로 선 자본주의(Capitalism Alone)’을 통해 오늘날 세계 경제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미국의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든,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근원적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 저자는 미국과 유럽 최신 자료는 물론 중국 내부 자료도 활용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도시·농촌별 지니계수와 공산당원과 비당원의 행정구역별 수입 차이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해 내놓은 책이다.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 광장에 노숙자 텐트가 일정한 간격에 맞춰 설치돼 있다. 미국의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는 고학력 엘리트에게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AFP연합뉴스

밀라노비치는 먼저 서구 자본주의의 유형을 크게 3가지로 나눈다. 1914년 이전 영국을 대표로 하는 ‘고전적 자본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서유럽의 ‘사회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21세기 초 현재 미국의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다.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큰 틀 안에 함께 자리하지만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 특히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 결혼으로 인한 부의 변동, 부의 대물림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고전적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자본소득 부자와 노동소득 부자가 달랐지만 현재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과 노동 소득을 동시에 올리는 부자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또 같은 계층 내에서 결혼이 이뤄지면서 부는 점차 집중되고, 부의 상속도 더욱 강화됐다. 자본·노동 소득을 동시에 거머쥔 부자 엘리트들은 자신의 자녀와 정치적 통제에 많은 투자를 한다. 자녀에 대한 투자는 고급 교육, 정치적 통제는 유리한 조세 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지난 7월 중국 상하이의 고층 빌딩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초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지만 불평등과 부패를 낳았다./EPA연합뉴스

그렇다고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 도입 이후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인민의 생활수준 도 괄목할 만큼 향상했지만 곳곳에서 불평등이 폭발하고 있다. 지니계수 기준으로 미국의 가처분소득 불평등 수준이 1980년대 중반에서 2013년 사이 4지니포인트 증가하는 동안 중국에서는 거의 20지니포인트나 증가했다. 효율적 관료주의와 국가의 자율성을 앞세우지만 만연한 부패는 부당한 고소득을 창출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밀라노비치는 국가 자본주의가 생존력을 가지려면 정치와 경제가 명확히 분리되고 국가는 부패 없이 중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폐기되고 완전히 다른 대안 체제가 도입될 수 있을까. 밀라노비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경쟁적이고 소유 본능적인 의식구조를 폐기하면 오히려 소득 감소, 빈곤 증가, 기술 진보의 감속 또는 퇴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밀라노비치는 대안으로서 대중적 자본주의와 평등주의적 자본주의를 제안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모두가 거의 동일한 비율로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을 갖는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은 첫째, 중산층에 대한 세제 혜택이다. 대신 상속세를 높이는 등 부자들에 대한 세금은 증액한다. 둘째, 공교육 질의 제고다. 이를 통해 세대에 걸친 세습의 이점을 줄이고 기회 평등을 보다 현실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주 제한 완화, 넷째는 정치 자금 제한을 통해 부자의 정치 과정 지배능력을 축소하는 것이다.

밀라노비치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예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식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든,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든 부를 쥔 엘리트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 유지 및 보존을 위해 정치 분야를 통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2만1,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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