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옵니다’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
최근 지역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문구는 달라진 추석 풍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막기 위해 추석 명절 때 고향 방문을 자제하자는 취지다. 실제 서울시민 넷 중 셋은 올해 추석 연휴 때 고향 방문 등 장거리 이동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코로나 추석’에 명절 민족 대이동은 사라졌다.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 국민 이동 벌초 및 추석 명절 모임을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3만5,563명의 동의를 얻고 지난 17일 마감됐다. 비슷한 내용의 ‘추석 연휴 이동금지령과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코로나19 재확산을 막아주세요’라는 청원은 현재 진행되고 있다.
지방에서도 ‘오지 말고 가지도 말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경남 창원시는 시민들에게 “이번 추석은 고향을 방문하지 않아도 불효가 아닙니다. 코로나19로부터 나와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집에 머물러주세요”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전남 완도군은 추석 때 고향 부모가 서울 등 도시에 사는 자녀를 찾아가는 역귀성을 막는 ‘이동멈춤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이에 추석도 ‘비대면’이 대세가 되는 분위기다. 추석의 대표 행사인 벌초의 경우 직접 모이는 대신 벌초대행 서비스를 신청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개인과 달리 문중에서 진행하는 벌초는 대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올해는 문중의 벌초대행 신청도 폭증했다. 호텔과 유통업계의 추석 음식 대행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특급호텔들도 명절음식을 직접 만들어 15만원에서 4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추석음식도 가정간편식(HMR)이 대신해 CJ제일제당에서 올해 처음 선보인 냉장·냉동 HMR 선물세트가 완판됐을 정도다. ‘드라이브스루 귀성’이라는 이색풍속도도 등장했다. 부모님을 짧게나마 뵙고 선물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고향 집을 ‘스치듯’ 지나가는 형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추석 전 미리 고향에 다녀온 직장인 김씨는 “추석 명절 귀성을 자제하는 분위기에서 추석 전에 미리 부모님 얼굴이라도 잠깐 뵙고 선물도 드리려 드라이브스루 귀성에 도전해봤는데 막상 부모님 얼굴을 보니 쉽지 않더라”라고 했다.
‘추석을 대하는’ 인식도 달라졌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과 서울연구원의 ‘제2차 서울시민 코로나19 위험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추석 및 명절 연휴에 장거리 이동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6.8%는 ‘없다’, 16.0%는 ‘있었지만 코로나로 취소했다’고 답했다. 서울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92.7%로 4∼5월 1차 조사 때의 47.4%에서 배 가까이 늘었다. 이번 조사는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 이동자제를 권고한 이후인 이달 8∼11일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84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