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건설기계 왕좌' 노린 현대重, 결국 출사표…두산 구조조정 매듭 짓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3파전
DICC 채무리스크 줄자 참여로 선회
공시번복 불이익도 감수하며 강수
KDB 등에 업고 '자금' 유리한고지
성공땐 산업차·굴삭기 점유율 70%
PEF 베팅 따라 몸값 치솟을수도


두산(000150)그룹 구조조정발(發) 인수합병(M&A)의 ‘알짜’인 두산인프라코어(042670)를 두고 벌어질 ‘전(錢)의 전쟁’이 3파전으로 막을 올렸다. 국내 건설기계산업에서 만년 2등이던 현대중공업지주(267250)가 1등으로 올라서겠다며 출사표를 던졌고 대형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가 맞불을 놓았다. 현대중공업이 깜짝 등장한 KDB인베스트먼트를 등에 업고 열세로 꼽히던 자금동원력을 단번에 뒤집으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황. 인프라코어의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우발채무를 두산중공업이 얼마나 부담하느냐가 향후 인수전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이 인프라코어 인수에 성공할 경우 국내 건설기계산업은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인프라코어는 지난 2018년 기준으로 국내 굴삭기 시장에서 43.5%를 점유한 압도적인 1위 사업자다. 뒤이은 2위였던 현대건설기계가 인수전에서 승리할 경우 시장점유율을 70%대까지 높일 수 있게 된다. 인프라코어가 매물로 나오면서 꾸준히 현대중공업그룹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혔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현대중공업은 소극적 자세를 보여왔다. 우선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으로 재무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 여기에 두산그룹 측이 1조원가량으로 예상되는 DICC 우발채무를 인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사실상 인수전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었다. 지난달 8일 현대중공업이 인프라코어 인수전 참여 검토와 관련해 부인 공시를 냈던 것도 이런 사정이 작용했다.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상 조회공시에 대한 답변은 3개월 내 번복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불과 두 달여 전만 하더라도 현대중공업은 인프라코어를 인수할 생각이 없었던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공시번복에 따른 불이익까지 감내하면서 태세를 바꾼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두산중공업이 DICC 소송 우발채무와 관련해 “책임지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여기에 KDB인베스트먼트가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겠다고 손을 내밀면서 인수전에서 써낼 수 있는 ‘실탄’도 두둑해졌다. 공적 성격이 강한 KDB인베스트먼트 측도 산업 재편, 경쟁력 강화, 국내 기술 유출 방지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현대중공업을 적합한 인수후보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프라코어는 방위산업체로 지정돼 있는데다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해 사실상 해외 매각이 불가능하다.

관건은 맞불을 놓은 MBK와 글랜우드PE가 어느 정도의 인수 의지를 보이느냐다. MBK는 8조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보유한 아시아 독립계 1위 PEF다. 글랜우드PE도 최근 8,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1조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몸값은 이들 PEF가 얼마를 ‘베팅’하느냐에 따라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인프라코어 매각 흥행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두산그룹도 구조조정의 ‘마지막 퍼즐’을 끼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두산중공업이 클럽모우CC(1,850억원)를, ㈜두산이 두산솔루스(6,986억원), 모트롤BG(4,530억원), 네오플럭스(730억원), 두산타워(8,000억원)를 매각해 약 2조2,000억원을 확보했다. 이들 자금 가운데 일부는 오는 12월 예정된 1조3,000억원 규모의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투입된다. 여기에 박정원 두산 회장 등 대주주 일가는 책임경영 차원에서 5,700억원 가치의 두산퓨얼셀 주식을 두산중공업에 무상으로 넘기기도 했다. 인프라코어 매각에 성공하면 채권단인 KDB산업은행 등에 약속한 연내 3조원 규모의 자구안도 달성하게 된다.
/김상훈·한동희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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