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낙태죄 전면폐지' 목소리..."국가가 출산·육아 책임지나"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입법시한까지 세 달
정부 '임신 기간 기준 제한적 허용' 방침에
여성계서 '낙태죄 전면 폐지' 목소리 커져
"안전하게 낳고 잘 키울 수 있는 환경 보장"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형법 내 낙태죄의 대체입법 시한이 세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낙태죄 전면 비범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임신 후 특정 기간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방안으로 형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성계는 정부가 낙태죄를 폐지함과 동시에 아이를 잘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여성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낙태죄 존치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를 통해 (정부가) 임신중지 허용 기간을 14주 내외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며 “사실상 낙태죄는 그대로 두고 허용기간만 최소한도로 두겠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호주제 폐지를 이끌었던 여성계 원로 100인도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임신 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해야 한다”며 “원치 않는 임신 예방, 임신중지 접근성 확대, 안전한 의료지원 체계 마련 등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낙태죄를폐지하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들. /인스타그램 캡처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게시물에 ‘#낙태죄폐지가답이다’ ‘#처벌대신권리를’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온라인 행동이 펼쳐졌다. 이날 이은진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연구활동가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해외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아도 임신중지를 포함한 다양한 성과 재생산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는 국가일수록 임신중지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할 대책은 무엇 하나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으면서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을 일부만 면제하겠다는 것은 전혀 변화하지 않은 태도”라고 지적했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지식과 환경이 모든 여성들에게 갖춰져 있나?”고 반문하며 “청와대는 임신을 주수별로 선별해서 엄벌하는 퇴행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원치 않는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제대로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왜 (낙태를 한) 여자만 범죄자로 만드느냐”며 “임신은 여자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는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의 낙태죄에 대해 지난해 4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는 올해 말까지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부나 배우자가 정신장애·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등에 한해 임신 24주(약 6개월) 내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정부가 현재 준비 중인 개정안은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낙태를 허용하되 이전보다 폭넓은 허용 사유를 두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기준 OECD 36개 회원국 중 경제·사회적 사유와 본인 요청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는 각각 30개국과 25개국이다. 일례로 영국은 임신부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위해를 끼치는 경우 24주 이내의 낙태를, 임신부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있는 경우 주수에 상관 없이 낙태를 허용한다. 지난 1988년 낙태죄를 전면 폐지한 캐나다에서는 알버타, 온타리오 등 일부 주에서 유산유도제를 무료로 제공한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