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 /연합뉴스
‘미스터 스마일’로 이름난 정세균 국무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집회 참여자 현장 검거’ ‘고향 방문 자제’와 같은 초강수 카드를 꺼냈다. 이 조치는 이미 지난 28일부터 시작됐지만 연휴가 본격화되는 30일부터 본격적인 검증대에 설 전망이다. 이어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예고된 3일 개천절과 9일 한글날은 추석 연휴 특별방역의 최대 고비로 꼽힌다. 5월 초 이태원 클럽발 감염, 8월 중순 사랑제일교회 중심 재확산 등을 이미 겪은 탓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 총리의 이번 방역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추석연휴를 시작으로 올 하반기 코로나19 방역 성과에 따라 정 총리가 ‘잠룡’의 이미지를 벗고 다음 대선 유력 주자 중 하나로 부상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 본인은 선을 긋고 있지만 6선 국회의원과 여야 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까지 사실상 ‘대통령만 빼고 다 해 본’ 그의 이력에 비춰볼 때 다음 대권 도전은 정해진 수순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만만찮게 나온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 /연합뉴스
“개천절·한글날 집회 즉시 검거... 고향 안 가는 게 효도”
정 총리는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석 연휴 특별방역과 관련해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 총리는 무엇보다 일부 보수단체가 예고한 개천절, 한글날 정부 반대 집회를 겨냥해 “동료 시민들이 각자의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며 방역을 위해 쌓아온 공든 탑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 광복절 불법집회의 악몽이 되살아나 온 국민이 두려움에 차 있다”며 “정부는 연휴 기간 중 집회 시도 자체를 철저하고 빈틈없이 차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정부는 불법집회에 대해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사전에 집결을 철저히 차단하고 불법행위자는 현장에서 즉시 검거하는 등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는 우리 민주헌정이 보장하는 고귀한 기본권임에 분명하다”며 “하지만 사람이 먼저이고 어떠한 주장도 어떠한 가치도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추석 고향 방문 자제도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정 총리는 “예년 같으면 가족·친지를 만날 생각에 마음 설렐 이즈음에 재난안전과 관련하여 불편한 말씀을 드리게 되어 송구스런 마음”이라며 “이번 추석은 부모님과 어르신의 안전을 위해 고향방문을 자제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어 “전쟁에 준하는 사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올해만큼은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게 불효가 아니고 오히려 효도하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여러 사람이 일시에 몰려드는 여행지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라며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우리 국민의 협력과 인내, 상호 신뢰와 절제를 전 세계가 격찬하고 있지만 우리가 여전히 전대미문의 재난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엄연하고 엄중한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터미널을 방역하는 관계자. /연합뉴스
2주간 추석 특별방역... “고비 넘기면 일상 복귀”
정 총리가 적용한 특별방역 조치의 핵심 정신은 ‘연휴라도 여러 명은 절대 모이지 마라’다. 28일부터 2주간 마을 잔치나 지역축제, 민속놀이 대회 등까지 포함해 실내 50인, 실외 100인 이상 집합이나 모임, 행사 등을 열 수 없게 했다. 프로야구 등 스포츠 행사도 무관중 경기로 진행해야 한다.
목욕탕이나 중소형 학원, 오락실, PC방 등 다중이용시설은 마스크 착용, 출입명부 관리 등 방역 수칙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 PC방은 미성년자 출입이 금지되며 좌석을 한 칸씩 띄어 앉은 상태에서만 음식을 판매·섭취하게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실내 국공립시설은 다시 문을 여는 대신 이용 인원은 평상시의 절반 수준으로 제한한다. 유명 관광지에는 3,200여 명의 방역요원이 배치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방역 조치가 구분돼 적용되는데 △클럽·룸살롱 등 유흥주점 △콜라텍 △단란주점 △감성주점 △헌팅포차 △노래연습장 △실내 스탠딩 공연장 △실내집단운동(격렬한 GX류) △뷔페 △방문판매 등 직접판매홍보관 △대형학원(300인 이상) 등 수도권 지역 고위험시설 11종엔 집합금지 등 기존 조치가 10월11일까지 계속 적용된다. 여의도·뚝섬·반포 한강공원의 일부 밀집지역 통제도 추석 특별방역 기간까지 유지된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고위험시설 중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유흥주점 △콜라텍 △단란주점 △감성주점 △헌팅포차 등 5종의 유흥시설과 방문판매 등에 대해 2주간 집합금지 조치를 실시한다.
방역당국은 이번 연휴 고비만 잘 넘기면 다시 경제활동이 가능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료제공=정세균 총리 SNS
“이번 추석엔 총리를 파세요” 본인까지 홍보
이번 추석 연휴 특별방역은 국가적 차원뿐 아니라 정 총리 본인의 정치적 입지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1월 취임 이후 코로나19, 수해, 태풍 등 온갖 재난 대응에만 매진해 온 만큼 이번 방역에 확실하게 성공할 경우 이후에는 그의 정치적 보폭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 총리가 9월 중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 만화 형식의 홍보물은 여러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정 총리가 지난 15~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번 추석엔 총리를 파세요’라는 제목의 게시물 3편을 두고 추석 이동 제한 정책과 함께 본인도 홍보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왔다. 정 총리의 캐리커처와 삽화가 포함된 해당 게시물은 추석 때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핑계로 총리 자신의 이동 자제 당부를 언급해 달라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첫 게시물인 부모님 편에는 부모가 자녀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 총리가 그러더구나. 추석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건 위험하다고. 용돈을 두 배로 부쳐다오”라고 말하는 내용을 담았다.
두 번째 게시물인 자녀 편은 ‘효녀 심청’이 “어머니 아버지 고향 안 가는 게 진짜 효도래요. 정 총리가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구성했다. 세 번째 삼촌 편에서는 삼촌이 조카에게 추석 연휴에 친구와 만남을 자제하고 ‘집콕’을 하라며 “정 총리가 친구와의 약속보다 가족의 안전을 지키라고 했다”고 말하는 내용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연합뉴스
“대권 생각 않는다”지만... ‘목요대화’ 책으로도 발간
대권 도전에 대한 정 총리의 공식 입장은 예나 지금이나 “현재로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이다. 다만 그 뉘앙스는 몇 달 사이 다소 달라졌다. 정 총리는 9월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권 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위기 관리의 리더십이 시대정신”이라고 답했다. 대권 도전 행보를 걷는다는 소문이 처음 돌기 시작한 지난 6월 때보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듯한 표현을 썼다. 당시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권이니 당권이니 아무런 상관도 없고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정 총리가 매주 ‘목요대화’를 이어가고 이를 지난 23일 책으로 발간한 점도 대권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로 보고 있다. 목요대화는 정 총리가 매주 목요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방역·보건·경제·산업·고용·문화·교육·국제관계 등 분야별로 각계 인사들을 목소리를 듣는 행사다. 국무총리 취임 때부터 ‘사회적 갈등 해결과 미래 준비를 위한 대화’ 모델을 구상해 왔던 만큼 이 행사에 대한 정 총리의 애착은 각별하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지난 4월23일 시작해 9월24일까지 열 아홉 차례 대담을 진행했다.
29일에는 세계 정상급이 모인 ‘코로나19 시대의 개발재원을 위한 정상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하면서 “‘K-방역 성공 노하우를 공유하겠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물론 정 총리는 아직까지 여론조사에도 잘 잡히지 않는 ‘대권 잠룡’이다. 오랜 경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다는 건 그의 최대 약점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추석은 여러모로 그에게 분수령이 될 수 있다. 그의 강점이 위기관리, 안정감 쪽에 집중된 만큼 이번 추석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완전히 바닥을 치느냐, 이태원 클럽과 8·15 집회 때에 이어 제3의 폭증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그의 대권 시계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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