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과 부활 반복하는 디지털교도소…주요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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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등장한 한 사이트, ‘디지털교도소’. 소개엔 대한민국 악성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라고 적혀 있습니다. 범죄자로 특정한 이들의 이름과 사진뿐 아니라 연락처, 주소, 학력 및 직장 정보 등 자세한 신상이 공개되어 있는데요. 사이트 운영자는 “대한민국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꼈다”며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신상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사촌동생이 N번방 피해자였다”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특히 약하다고 판단해 직접 신상 공개를 결심했다”고 전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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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교도소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건 지난 7월 6일. 법원이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하면서였습니다. 판결이 나온 당일 저녁, 디지털교도소는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 1위를 차지했는데요. 사이트에 손정우의 얼굴과 나이, 학력 등이 그대로 공개되었기 때문이죠. 이후 디지털 교도소는 고 최숙현 선수 폭행 가해자로 지목받은 경주시청 감독의 신상을 공개하고, 각종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던 이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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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적인 절차 없이 운영진의 판단으로만 일반인의 신상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개설 이후 꾸준히 논란이 됐습니다. 여기다 동명이인을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하고, 거짓 제보에 속아 섣불리 신상을 공개하는 등 무고한 사람들에게 실수로 큰 피해를 입히면서,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죠. 그러다 9월 3일, 사이트에 이름이 올라간 한 대학생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결국 9월 1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소위원회에서 디지털교도소 차단 여부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했죠.

그런데 뜻밖에도 사이트를 차단하지 않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방심위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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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교도소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 ‘사적 제재’

디지털교도소에선 운영진이 처벌의 내용과 대상을 직접 결정해 심판을 내립니다. 이렇게 사법체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이 사적으로 집행하는 단죄 또는 처벌을 ‘사적 제재’라고 부르죠. 낯선 명칭과는 다르게 시적 제재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입니다. 영어로 하면 바로 린치(Lynch)죠. 미디어에서도 쉽게 다뤄집니다. 범죄자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서 단죄하는 내용의 ‘데스노트’, 범죄가 판치는 고담시티 곳곳을 누비며 악당을 물리치는 ‘배트맨’도 사실은 사적 제재를 하고 있죠.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통쾌함을 느끼고요.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에선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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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적 제재는 처벌의 근거와 기준이 임의적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처벌을 할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일뿐더러, 처벌 주체에 따라 언제든 처벌의 대상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처벌자에게서도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죠.

오판 가능성도 높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디지털교도소의 경우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경로를 통해 습득한 정보로 무고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해 여러 번 피해를 일으켰는데요. 더 큰 문제는 이런 피해에 대해 마땅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사적 제재가 대부분 이중처벌의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점 등 역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점들은 결국 사법 체계를 무너뜨리는 길로 향합니다. 우리나라는 정해진 법률에 따라 저지른 죄에 합당한 만큼의 처벌을 받는 법치주의를 따르고 있죠. 하지만 사적 제재가 용인되기 시작한다면 주관에 의한 처벌받고,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절차를 거쳐 심판이 이뤄지고, 결과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쉽게 일어나겠죠. 최악의 경우 권력집단이 사적 제재를 악용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는 엉망이 되겠죠.

사적 제재가 나쁘기만 한 거라면 방송통신심의윈회는 어째서 첫 번째 논의에선 사이트 유지 결정을 내린 걸까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었습니다. 전체 사이트 내용물의 70% 이상이 불법이어야 사이트 전체에 제재를 가한다는 원칙이 이미 있는데, 전체 89건 중 12건만 불법 정보인 상황에서 디지털교도소를 폐쇄해버리면 과잉 규제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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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회의 내내 지속적으로 언급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공익성’인데요. 대다수 위원은 사이트의 불법성을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론 디지털교도소의 공익성을 인정했습니다. 사이트 폐쇄에 반대 의견을 낸 강진숙 위원은 “공적 법제도를 넘어서서 무고한 개인의 희생을 초래한 점에 대해선 합당한 조치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관대한 성폭력 처벌 상황에 대해 사회적으로 환기해야 하고, 한 번 더 성찰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는데요. 김재영 위원은 사이트 전체 폐쇄 찬성 입장이면서도 “나름대로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한국의 환경을 감안할 때 2기 운영진이 말하듯 이대로 사라지기엔 정말 아쉬운 사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방심위가 사이트 접속 유지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실제로 공익성이 두드러질 경우, 법치 아래서도 사적 제재가 용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양육비 미지급 부모를 신상 공개하는 사이트인 ‘배드파더스’인데요. 배드파더스에는 이혼 뒤 고의로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들의 이름, 얼굴, 나이, 직업 등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형식 자체가 디지털교도소와 흡사하죠. 배드파더스의 운영자 구본창씨는 지난 1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는데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재판부가 신상 공개에 따른 명예훼손보다 이를 공개해서 얻게 되는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겁니다. 특히 판결문에는 양육비 문제를 공적인 채무 관계로 봐야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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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재,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배드파더스의 사례만으로 사적 제재를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 말한 수많은 부작용들이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 사회에 사적 제재가 생겨나는 근본 원인인 ‘사법 불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교도소는 성착취물 제작 남성을 ‘고도비만’으로 감형한 사례, 아동포르노 유통으로 4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손정우에게 1년 6개월을 선고한 사례 등 국민의 법감정과 거리가 먼 판결들로 인해 쌓여온 판결 불신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지난 7월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기 운영자 박모씨는 “(디지털 교도소 운영이) 불법이 맞다고 생각하고, 범죄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과 상관없이 계속하는 거다. 조금 더 좋은 세상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는 9월 22일, 경찰 추적 20일 만에 베트남 호치민에서 검거되었습니다. 디지털 교도소 역시 9월 24일, 다시 열린 방심위 소위원회에서 결국 전체 차단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인 사법 불신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 2의 디지털교도소, 제 3의 디지털교도소가 생겨날지 모릅니다. 벌써부터 디지털교도소는 주소를 옮겨가며 부활과 차단을 반복하고 있죠. 사회 구성원들이 법 집행 과정 과 판결을 신뢰할 수 있어야, 굳이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적 제재를 감행하는 이들이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범죄를 막기 위해 범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생기는 아이러니, 더는 없어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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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수기자 minsoo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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