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깎아주면 소송'vs'주인은 망해도 되나'…막오른 상가임대차 분쟁

두산타워 상인들 첫 차임감액청구권 사용
코로나 위기에 월세 인하, 연체기간 연장 등
임대인 일방적 희생…부작용 우려 커져


“매출이 200만원도 안 되는데 월세는 1,000만원 가까이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월세 50%를 감면하더라도 빚을 져야 하는 게 지금의 상황입니다.”(이정현 두산타워 입주상인 비상대책위원장)

“대출을 잔뜩 끼고 산 꼬마 건물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데, 월세를 반으로 깎아주면 대출 이자도 못 냅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임대인에게 월세를 올려 받을 권리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국가가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임대인)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따른 임대인과 임차 상인들 간의 갈등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인데, 임대인들은 정부가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임차 상인들 또한 근본적인 해법과는 거리가 있는 대책이라며 탐탁지 않은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임차 상인들이 개정 법률에 따른 월세 인하 요구(실제 차임 감액 청구권 행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월세 내려달라” 첫 감액청구…갈등 본격화되나

두산타워 입주상인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시청 앞에서 진보당 서울시당 등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상인회 차원에서 차임 감액 청구권 행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 상권은 코로나19 여파로 주요 고객인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줄면서 매출액이 80~90% 감소했다. 상인들은 두산타워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청구권 행사 의사를 전달하고, 두산타워 측이 임대료 감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원에 소송을 낸다는 방침이다. 두산타워 상인들의 청구권 행사는 지난 24일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첫 행사 사례다. 이어 타 지역 상인회 등에서도 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두산타워 상인들이 28일 서울시청 앞에서 차임감액(임대료인하)청구권 행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처음 활용되기 시작한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은 코로나19를 비롯한 1급 법정 감염병 방역 조치로 타격을 입은 상가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감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감액의 하한선은 없지만 청구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반드시 임대인이 이를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입자는 임대인이 청구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원에 소송을 걸어 임대료 감액에 대한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법 시행일 이후 6개월 동안 임대료를 연체하더라도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했다. 기존 3개월 연체 허용 기간을 더하면 최대 9개월 간 계약 해지 없이 임대료 연체가 가능한 셈이다. 다만 연체를 봐준다고 해서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연체된 임대료는 보증금에서 차감되거나 나중에 갚아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 통과 후 “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 소비지출이 위축되고 상가임차인의 매출 및 소득이 급감하는 경제 위기가 지속됨에 따라 임대료가 상가임차인 영업활동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위기로 고통 받는 상가임차인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차인도 반대…“부실 법안으로 분쟁만 늘 것”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법안이지만 시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오고 있다. 경제 논리보다 정치적 판단에 따른 제도인 만큼 예상치 못한 시장에서의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경제적 손해를 눈앞에 두게 된 임대인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대출이자나 세금 등 고정지출 비용은 그대로인데 월세를 일방적으로 깎아줘야 하거나 월세가 밀려도 계약 해지를 못하면 임차인보다 임대인이 먼저 파산 위기에 놓일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대출을 끼고 건물을 산 임대인의 경우 타격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임대인은 “정작 영업정지 처분을 한 건 정부인데 왜 그 피해 보전을 임대인들에게 전가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정작 임차 상인들 사이에서도 이번 개정안에 대해 “근본적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며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임 감액 청구권의 경우 강제성이 없어 임대인과 불필요한 갈등만 초래할 수 있고, 연체 기간 연장도 어차피 보증금에서 차감되는 것이라 실제 월세 부담은 그대로라는 이유다.

국내 최대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한 임차 상인은 “강제성도 없는 임대료 인하 요구권을 실제로 사용하려는 자영업자(세입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임대인이 거부하면 그만인데 가게 뺄 생각으로 시도나 해보자는 것 아니고서는…”이라고 했다.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끊겨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가들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오승현기자

‘6개월 연체 허용’ 또한 임시조치 이후에는 보증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연체 기간을 늘려준다고 해도 어차피 연체된 월세는 보증금에서 차감되기 때문에 임차인 입장에서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다. 오히려 임대인 입장에서는 비슷한 조치가 되풀이될 가능성에 대비해 향후 보증금을 대폭 올리려 할 수 있어 임차인들의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조치로 소규모 임대인들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경매로 넘어가는 건물이 늘어나면 더 큰 부자들과의 빈부격차만 키울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자영업자는 “경매로 넘어가면 결국 더 큰 부자들이 ‘줍줍’해가고 비용회수를 위해 보증금과 월세를 올리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임대료 인하 요구권은 하한선이 없고, 반대의 경우 임대인의 증액 요구권은 반영되지 않는 등 법안 자체가 부실하게 설계돼 있어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만 늘릴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라면 국가에서 재원을 마련해 지원해야지, 이런 식의 접근은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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