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가능할까…정부·여당에 쓴소리 시작한 대법원[서초동 야단법석]

공수처 개정안에 이례적으로 반대 의견 제시
사전협의 없었던 집단소송제 두고도 불편한 기색
‘사법농단’ 판사들 줄줄이 무죄…사법개혁 무산 우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연합뉴스

사법개혁을 두고 힘을 합쳐야 할 정부와 사법부 간의 갈등도 추석 연휴 이후 관심이 집중될 법조계 이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정안에 이례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던 대법원이 법무부가 상의 없이 집단소송제 제정안,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문제가 된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사법부 인사들이 법정에서 줄줄이 무죄 선고를 받고 있는 상황도 대법원과 정부의 갈등을 키울 수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28일 입법 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두고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 중이다.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기존에 증권 분야에 한정됐던 집단소송을 모든 산업에 적용하는 내용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확대한 상법 개정안과 함께 국내 기업 경영은 물론 법조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는 두 법안 입법 예고와 관련해 “효율적 피해구제·예방이 이뤄지게 되면서 기업의 책임경영 수준이 향상돼 공정한 경제환경과 지속가능한 혁신성장 기반이 함께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법무부가 해당 법안들을 준비하면서 사건을 집적 담당하게 되는 대법원과 사전협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입법예고 전 사전협의가 관행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번처럼 재판 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은 법원과 사전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기업 경영과 사회적 파장이 큰 법안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대법원이 ‘패싱’된 것에 대해 불쾌함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흥구 신임 대법관(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대법원이 법무부에 항의성 입장을 밝힌 것은 법조계에서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법안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소송법 제정안의 경우 1심 재판에 국민참여재판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난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무작위로 선정된 국민 배심원들이 유무죄와 형량에 대한 평결을 내리는 제도다. 집단소송법 제정안에서 형사사건과 달리 배심원 평결이 법원의 판단을 구속하지 않도록 했지만 재판이 배심원들의 이성보다는 감정에 휘둘리면서 여론몰이 식 ‘마녀사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사법부 입장에서는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집단소송 사건을 국민 배심원 앞에서 진행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집단소송법과 관련해서는 적용 범위를 두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를 하면서 집단소송제 확대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소급적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헌법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대형로펌의 상법 전문 변호사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적용 범위를 법 시행 이전 발생한 사건에도 소급 적용하기로 했는데 이는 헌법의 불소급 원칙을 위반하는 시도인 만큼 위헌 소지가 있다”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활동영역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큰 만큼 반드시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여당이 추진 중인 공수처에 반대 의견을 냈던 것처럼 법무부 입법 예고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수처 법에 대하여 검토의견서를 통해 공수처가 수사기관 옥상옥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대법원은 “조직이 비대해지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재고 필요성을 지적했다. 향후 대법원이 공수처처럼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향후 입법 과정에서 의견조회 요청이 오면 검토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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