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실 못하는 공익신고제]까다로운 '제보자 요건'… 소신발언 막는다

<상>'바늘구멍'된 보호망
2011년 법 도입됐지만 인증문턱 너무 높아
추 장관 아들 관련 제보자도 보호 못받아
“열거주의서 포괄주의로 적용 범위 바꿔야"
수사기관 등으로 한정된 신고채널도 다원화 필요

용기를 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할 제보자를 보호하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2011년 9월 30일 처음 시행된 지 만 9년이 흘렀다. 군 정보기관의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부터 지난 정부에서의 국정농단 사태, 현 정부에서의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군복무 휴가 특혜 논란에 이르기까지 여론을 뒤흔든 주요 사안들의 배경에선 내부고발자들의 소신 발언이 있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들이 이후 마주해야 할 현실은 참혹하다.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부조리를 고발했지만 공익신고자로 인정받기는커녕 신상털기의 재물이 되기가 일쑤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문제점과 대안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사진=이미지투데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신고한 사람을 보호하고 지원함으로써 국민 생활의 안정과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풍토 확립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제보자가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선 먼저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신고대상과 절차 등 인증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관련 법령에 따르면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서 열거하고 있는 공익신고의 범위는 284개 법률로 한정돼있다.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 도입 당시 신고대상 법률이 180개였던 것에 비하면 범위가 크게 늘어나긴 했다. 지난 5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오는 11월 20일부터는 467개까지 범위가 한층 더 늘어난다. 하지만 법에서 일일이 신고대상을 지정해놓은 열거주의 자체로는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공익신고자들을 모두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특혜 논란 과정에서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관련 의혹을 처음 제보한 당직사병 현모씨는 지난 9월 14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 보호신청을 했지만 권익위가 신고대상 법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익신고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놓을 것이다. 제도의 허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민간기업의 횡령·배임에 대한 고발행위 역시 공익신고 관련 법률에 포함돼있지 않는다. 회사 내부자가 회계비리를 고발하더라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등 해외와 마찬가지로 국내에도 공익침해행위에 대해 ‘포괄주의’를 적용해 탄력적으로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헌영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는 “현행 법의 적용범위가 너무 좁다 보니까 본인이 신고하려는 내용이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도 알기 힘들다”며 “폭넓은 공익신고 보장을 위해 포괄주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할 수 있는 창구가 제한적인 것도 문제점이다. 현행 법에 따르면 공익신고 접수기관은 공익침해가 발생한 기관·단체·기업의 대표와 조사 권한을 가진 행정·감독기관, 수사기관, 국회의원, 권익위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론이나 시민단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등을 이용한 공익신고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고발자가 행정·감독기관에 신고해도 조사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올해 잇따라 불거진 ‘공군 황제 병사’ 의혹과 ‘육군 여단장 갑질’ 논란 등 군대 내 부조리 고발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이뤄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공익신고의 접수창구를 보다 다원화해 제보자를 적극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언론과 시민단체 뿐 아니라 제보다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 등 온라인공간을 활용한 제보도 공익신고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선 그동안 언론과 시민단체를 신고기관에 포함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웃 나라 일본도 보도기관이나 소비자단체 등에 공익 신고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박 대표는 “지금의 절차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형식적”이라며 “언론이나 다른 창구를 통한 공익신고도 인정되도록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기문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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