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재정준칙안의 최대 문제점은 적용 시점을 5년 늦춰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준칙에 구속되지 않고 나랏빚을 펑펑 쓸 수 있도록 한 셈이다. 한도마저 시행령을 고쳐 정부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한 것도 큰 문제다. 게다가 기준 자체가 너무 유연한데다 적용 면제·완화 조항이라는 예외까지 뒀다.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까지 40%가 마지노선이었는데 60%로 느슨해졌다. 제한 기준도 국가채무비율과 재정수지 각각이 아니라 합쳐서 종합 판단하도록 했다. 적자 폭이 큰 관리재정수지 대신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택해 물타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무줄 같은 느슨한 제동장치로는 현금 살포로 표를 사려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막는 게 불가능하다.
현재 재정준칙의 근거를 법률에 둔 나라는 103개국, 헌법에 규정한 나라는 스위스·독일 등 14개국에 이른다. 최근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재정건전화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 등은 국가채무비율이 45%,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3%를 넘기지 못하도록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 당시 예산 편성 때 국가의 신규 채무를 전년도 GDP의 0.35%로 제한하는 ‘재정건전화법’을 대표 발의했었다. 차기 정권에서 시행하겠다는 준칙은 결국 나랏빚 폭탄을 떠넘기는 면피용에 불과하다. 맹탕 재정준칙이 되지 않게 하려면 구체적 한도를 최소한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을 미래세대에 떠넘기지 않으려면 현 정권이 엄격한 재정준칙을 입법화해서 즉각 시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