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몽골의 러시아 지배 종식

1480년 우그라강 대치

1480년 가을, 우그랑을 끼고 대치 중인 몽골과 러시아. 킵차크한국이 갑자기 물러나며 240년에 걸핀 몽골의 지배도 끝났다./위키피디아

한국과 중국, 러시아 중에 몽골의 지배를 가장 오래 받은 나라는 어디일까. 답은 러시아. 1240년부터 1480년까지 240년 동안 몽골에 머리를 조아렸다. 원나라 존속 기간은 1271년부터 1388년까지 117년. 고려는 무려 9차례나 몽골에 침략당했지만 세 나라 중 복속기간이 가장 짧다. 1260년부터 1356년까지 94년간 몽골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가 몽골의 압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1480년 10월 8일 시작된 우그라 강의 전투. 몽골계 제국의 일부인 킵차크한국과 모스크바 공국이 병력을 얼마나 동원했는지는 정확한 사료가 없다. 양쪽이 최대병력을 모았다는 기록에 미뤄 1380년 쿨리코보 전투에 동원된 병력(킵차크한국 20만, 모스크바 연합 15만)보다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발단은 모스크바 공국 이반 3세의 충성 거부. 사신의 눈앞에서 세금고지서를 찢어버렸다.


분노한 킵차크한국은 적대했던 폴란드, 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고 러시아로 쳐들어갔다. 우그라 강에 도달한 몽골의 기병들은 강물만 얼어붙으면 진격할 심산이었다. 막상 강이 얼어붙은 11월 말, 킵차크 군대는 말머리를 돌렸다. 급작스런 철수는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하고 인도 땅을 휩쓴 티무르 군대의 침입 징조 때문. 킵차크한국은 재정벌을 다짐했으나 다시는 러시아 땅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러시아는 마침내 ‘타타르의 멍에’(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러시아는 이 시기를 일방적 수탈로 기억한다. ‘거대한 기생충이 러시아의 즙을 빨아 먹어 생명력을 고갈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몽골의 세금 징수는 악명 높았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없지 않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미국 사학자 찰스 핼퍼린의 ‘킵차크 한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히려 몽골의 지배 덕을 봤다.

농업사회였던 러시아가 몽골의 중계무역 덕분에 상업적으로 도약했으며 세금 징세를 대행한 모스크바야말로 최대 수혜자였다는 것이다. ‘타타르의 멍에’란 단어가 대중에게 퍼진 것도 19세기 이후다. 1502년 킵차크한국이 멸망하자 모스크바 공국의 ‘차르’는 ‘기독교 제국의 황제’이면서 ‘킵차크 칸의 정통 후계자’라고 선언했다. 오직 원한만 쌓인 관계였다면 후계를 자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몽골 지배가 과연 러시아에 해악을 미쳤는지 도움이 됐는지 여부는 논란의 영역에 속한다. 분명한 것은 몽골이 뿌린 유산이 오래 갔다는 점이다. 강력한 귀족 또는 세금 징세업자가 가난한 농민을 수탈하는 구조는 러시아 농노제로 굳어지고, 종국에는 유혈 혁명까지 불렀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