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공인중개사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시중은행에서 기업 대출을 담당하는 30대 은행원 김모씨는 이달 말 치러지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지난 1년간 준비해왔다. 김씨는 “요즘 은행원의 화두가 5년 후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며 “밖에서는 은행원을 ‘철밥통’이라고 하지만 내부적으로 점포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 자격증은 따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통 은행이 소리 없이 ‘인력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다. 휴대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사람이 늘고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이 약진하며 비용절감 차원에서 지점은 빠르게 줄고 있다. 이에 인력도 급감하고 남아 있는 기존 직원들에게는 재교육이 한창이다.
1년에 100개씩 증발하는 은행 지점...임직원도 3년새 7,600명↓ |
이와 관련, 한 금융지주의 인사담당 부사장은 “인터넷은행이 대출 금리를 연 3%로 준다고 하면 우리는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최저가 3.5%”라며 “인터넷은행은 점포도 없고 직원도 많지 않아 한 해 인건비 등 예산이 1,000억원대에 불과한 반면 은행은 수조원에 달해 금리를 더 낮게 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빠르게 고도화하면서 기존 은행원이 하던 예금·대출·상담 등의 업무도 대체하고 있다. 그는 “결국 점포 축소, 총인원 감축 등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며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 신뢰가 필요한 기업금융, 자산관리(WM) 인력은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보고 관련 직무로 직원들이 전환할 수 있게 재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기업금융·자산관리 재교육 한창...'대마불사' 외치며 버티는 은행원도 |
금융당국도 이를 어느정도 묵인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이 은행의 빠른 점포 축소가 노령층 등 금융소외계층의 접근성을 낮출 것이라며 속도 조절을 당부하고 나섰지만 금융위원회는 다소 결이 다르다.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금융환경 변화와 금융업 일자리 대응방향’을 발표하며 “금융사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은행의 인력 감축 등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융위도 전통은행의 비용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며 “만약 고비용구조를 고집하다가 경쟁에 많이 뒤쳐지게 되면 결국 국가 전체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노조 위원장 이·취임식 및 대의원대회에서 박홍배(오른쪽) 신임 위원장과 허권 전 위원장(왼쪽)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금융노조는 ‘정년 65세’ 카드를 들고 나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금융노사는 노조 요구인 정년연장을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존 은행이 이미 인터넷은행보다 경쟁력이 뒤진 상황에서 호봉제를 유지하며 정년까지 연장하면 결국 비용만 크게 늘 것”이라며 “청년채용도 줄이고 기존 밥그릇만 공고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