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능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려면

서승직 인하대 명예교수

서승직 인하대 명예교수

국제기능올림픽대회(WSI)는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한 유럽경제를 부흥시킨 동력으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70년 역사의 국제조직이다. 82개국 회원국은 전 세계 인구 3분의 2를 연결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억 명의 젊은이들이 기술을 익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일찍이 WSI를 주도해온 독일과 스위스 등은 직업교육의 기반 구축과 산업기술 인재육성으로 제조업 강국의 실현과 능력중심사회의 표상인 기능선진국이 됐다. 1966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기능 한국) 창립과 WSI 가입은 빈곤탈출과 경제적 자립이 기술인력 육성에 있음을 통찰한 것에서 비롯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산업기술력은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발전의 견인차가 됐다. 대외적으로는 기능 강국 수성과 국위선양으로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고취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능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기능 강국의 자리에서마저 밀려난 상태다. 일각에서는 기능경기대회의 전면 폐지까지 주장한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기능선진국 실현을 위한 선결 조건을 짚어본다.


첫째, 직업교육의 본질 회복과 WSI가 추구하는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기능올림픽은 직업교육의 본질로 표출되는 기술교류의 경연무대인 것이다. WSI의 본질은 종합우승국을 가리기보다는 기술교류와 경쟁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또 직업교육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에 있다. 대한민국이 기능선진국의 반열에 들지 못한 것은 직업교육의 혁신보다 당장의 성과만을 지나치게 추구했기 때문이다.

둘째, 기능 한국은 전문적 독립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의 정부주도 시스템은 운영과 감독기관 담당자들의 짧은 순환보직으로 전문성과 사명감이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WSI에서 활동할 한국대표를 상황과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임명한다는 것이다. 오프프라인 시대에는 통했을지 모르나 유럽의 기능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시스템운영이다. 늦었지만 민원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모순을 바로잡는 혁신이 기능인을 섬기는 공직자의 헌신일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각국이 자국 제일주의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이때 수출 주도의 한국경제가 살 길은 기술인재를 육성해 차별된 제조업 강국이 되는 길뿐이다. 지난 2009년 캘거리대회에서 당시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는 “제조업의 힘은 현장에 있고 현장의 경쟁력은 기능 인력에서 나온다”며 선수들을 격려한 것은 단순히 사기를 북돋기 위함이 아니다. 제조업 강국은 곧 능력중심사회의 표상인 기능선진국의 실현이며 또 학벌 만능주의를 해소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기능 한국이 환골탈태의 각오로 혁신해 기능인과 직업계고의 희망인 기능선진국으로 거듭나길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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