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사의 ‘사전유언장’으로 불리는 정상화·정리계획(RRP)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금융사가 부실해졌거나 도산 위기에 처했을 때 주주와 예금자 등 채권자가 금융사 손실을 먼저 부담하는 베일인(Bail-in) 제도는 제외하기로 했다. 베일인 제도로 오히려 금융사 부실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금융사 도산은 물론 고객과 투자자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점과 금융권의 반발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RRP 제도에 베일인을 포함하지 않기로 잠정 결정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융안정위윈회(FSB) 회원국 중 베일인 제도를 도입한 곳은 소수”라며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 베일인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사 정상화 및 정리 과정에서 중요 금융기관(SIFI)의 부실 전이를 차단하고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RRP 제도 도입의 취지인 만큼 주주와 채권자가 금융사 손실 일부를 부담하는 베일인 제도는 RRP의 핵심이었다. FSB가 각 회원국에 제시한 권고안에도 RRP 작성과 일시정지권 도입 등과 함께 ‘베일인 제도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실 금융사에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제도가 필수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 추진 때부터 베일인 제도는 뜨거운 감자였다. 베일인이 도입되면 주주뿐만 아니라 채권자도 손실을 나눠야 한다는 점에서 예금자와 은행 채권자의 부담이 커진다는 게 반대 측의 입장이었다. 예금자의 예금을 보호하는 예금자보호법과 예금자가 금융사 부실을 분담하는 베일인이 상충한다는 것도 문제다. 또 금융사에 대한 정부 지원 가능성이 약화한다는 점에서 베일인이 금융사의 신용등급 하락에 영향을 주고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조달금리가 높아지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베일인을 국내 시장 여건에 맞게 수정해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베일인이 도입되지 않으면 결국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입법과정에서 권고안의 내용을 제대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