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패러다임이 PC에서 중국의 주무대인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꾸준히 시장 규모를 확대해온 중국의 개발력이 한국을 능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과금 일변도 정책과 고객들의 눈길을 끌 만한 창의적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도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다. 개발력마저 앞서버린 중국 게임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콘텐츠산업의 본질에 집중해 빠르게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원신’은 세계적으로 2,000만장 이상 판매된 닌텐도의 어드벤처 게임 ‘젤다의 전설-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 버금가는 높은 퀄리티로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중국산 양산형 모바일게임의 특징으로 여겨지던 자동사냥·자동진행 등 ‘방치형’ 플레이를 위한 기능은 찾아볼 수 없다. 수집형 롤플레잉게임(RPG) 특유의 BM(과금 모델)이 접목되기는 했지만 과금 없이도 게임 진행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 최대 콘텐츠 대국인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매출 2위, 4위에 이름을 올린 것도 원신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중국 게임이 게임성까지 갖춰 매출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것이다.
중국 모바일게임은 콘텐츠의 양과 질 모두에서 고도화를 이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발간된 보고서에서 “중국 모바일게임은 지속적인 퍼블리싱(유통)과 더불어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정품 국산 지적재산권(IP)의 육성과 개발에 주력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모바일게임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278억9,000만위안에서 올해 2,082억6,000만위안으로 6년 새 7.5배 성장했다. 모바일게임 성장에 힘입어 올 상반기 중국 제작 게임 매출은 1,201억4,000만위안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30.4% 급증했다.
반면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모바일게임은 ‘확률형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과금 일변도 정책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엔씨소프트(036570)의 모바일 다중접속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 ‘리니지2M’은 올 4월 아이템 구성 대비 비싼 패키지 상품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았다. 유저 커뮤니티에서 리니지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의 해프닝 끝에 지난해 11월 출시 이후 줄곧 유지하던 구글 매출 1위 자리에서 밀려났다. 넥슨이 8월 출시한 신작 MMORPG ‘바람의나라:연’ 역시 ‘환수(펫) 뽑기’ ‘장비 강화·각인’ 등 게임 전반에 걸친 과금 콘텐츠로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현재 국내 매출 상위권인 모바일게임들은 리니지·바람의나라·카트라이더·라그나로크 등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나온 PC게임 기반이다. 같은 게임을 PC와 모바일·콘솔 등 다양한 기기에서 연결되게 플레이하는 ‘멀티플랫폼’ 트렌드와 달리 기존 PC게임을 모바일에 단순 이식하는 ‘IP 재탕’에 유저들의 피로감은 커지고 있다.
‘판호(영업권)’ 발급이 무기한 중단돼 중국 수출길이 막힌 상황에서 한국 게임계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실적 기준으로 추산했을 때 판호 발급이 중단된 4년간 10조~17조5,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이 증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처음에는 ‘짝퉁’ 게임에 불과하다는 색안경을 꼈는데 코스튬·모션·이펙트 등 모든 측면에서 퀄리티가 이미 한국을 초월했다고 본다”며 “중국은 한국의 수백배에 달하는 개발인력을 투입할 수 있어 차이가 점점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게임사 관계자도 “현재 국내 게임사 중 같은 기간에 원신 정도 되는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국내 게임업계의 생존을 위해 질 좋은 게임 콘텐츠라는 산업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원신을 기점으로 한국의 게임 개발력이 최고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재미라는 게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경쟁력 있는 IP를 만들어 매출이 따라오는 구조가 돼야지 초기 유저를 쥐어짜는 방식으로 돈을 뽑아내는 구조는 악순환을 부를 뿐”이라고 강조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