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최장수 국토부 장관의 자기부정

권혁준 건설부동산부 기자


“숫자로 현실을 왜곡하지 맙시다. 현실과 괴리된 통계는 불신만 키웁니다. 현장에서 국민의 체감도를 가지고 이야기합시다.”

‘최장수 국토교통부 장관’ 타이틀을 거머쥔 김현미 장관이 3년 전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수치만 개선하는 통계 ‘분식(粉飾)’이 아닌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펴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의 최근 발언 등을 보면 장관의 다짐과는 달리 정책 실패를 덮기 위해 숫자·말장난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다.


김 장관은 앞서 30대의 ‘수도권’ 청약 당첨 비율이 31%에 달한다며 ‘영끌’까지 하며 주택을 매수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서울 청약 당첨 커트라인이 60점을 훌쩍 넘기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젊은 세대들의 체감과 동떨어진 현실 인식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청약에 당첨된 30대의 비율은 10.4%에 그쳤다. 경기·인천 내 비인기 지역까지도 ‘수도권’이라는 범주에 끼워 넣는 말장난을 통해 30대 당첨 비율을 부풀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토부는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5년간 100만가구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에서는 ‘부지 확보’를 주택공급 기준으로 삼아 사업자도 구하지 못한 허허벌판을 주택공급 수에 포함했다. 공공분양에서는 착공하지도 않은 단지들 또한 수치에 포함시켰다. 시장에서 부르짖는 ‘공급 부족’에도 국토부는 여전히 ‘공급 충분’ ‘초과 공급’을 자축하는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집값은 11%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김 장관의 발언 또한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음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정부가 부동산을 ‘시장’과 ‘경제’가 아닌 ‘이념’의 영역에서만 바라보는 한 숫자와 현실의 간극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 실패를 덮으려는 말장난 속 국민이 느끼는 주거복지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숫자놀음은 그만두고 급격히 오른 집값·전셋값에 생활고를 호소하는, 과도한 규제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국민의 체감도’를 갖고 부동산 정책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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