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은 이동 수단과 함께 발전했다. 배가 발명되면서 바닷길이 열렸고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관차의 등장은 육상에서 대량수송을 가능하게 했다. 자동차는 개인의 생활권을 확장시켰고 비행기는 하늘에서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간은 또다른 이동수단의 혁명을 맞이했다.
MaaS(Mobility as a Service)는 차량 소유와 쉐어링을 넘어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교통 서비스다. 개별 교통수단의 노선, 결제 등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개념이다. 본격적인 MaaS 시대에는 단 하나의 앱으로 모든 이동을 해결할 수 있는데 그중 핵심 이동 수단이 바로 전동 킥보드다.
현대적 개념의 모터 달린 킥보드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07년 전인 1913년에 처음 등장했다. 1913년 설립된 뉴욕 소재 기업 ‘오토패드컴퍼니’가 제작한 미국 최초의 양산형 모터 킥보드 ‘오토패드’는 현재 우리가 흔히 보는 킥보드와 비슷한 형태로, 최대 시속 35마일(약 56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비록 전기모터는 아니지만 앞바퀴 쪽에 155cc 가솔린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다. 핸들바 컬럼을 앞으로 밀면 엔진이 작동하고 당기면 브레이크가 걸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요즘처럼 핸들 바가 접히는 폴딩 방식으로 휴대나 보관도 용이했다.
오토패드는 미국 뉴욕우체국에 도입돼 우편배달에 쓰이며 주목받았고 캘리포니아에서는 해변 리조트에서 유료 임대사업용으로 팔리기도 했다. 앞서나가는 사업가들은 1세기나 전에 킥보드 공유 서비스의 잠재력을 인지했던 셈이다.
경찰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도망 다닐 수 있어 갱단들이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이 제품은 여성의 이동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920년 미국에서는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서 많은 여성 참정권운동가가 직접 운전을 했고 아메리카오토패드는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오토패드를 출시해 여성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공략했다.
그러나 오토패드를 비롯한 초창기의 모터 킥보드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100달러의 가격은 포드의 모델-T가 345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고, 좌석이 없어 불편해 폭넓은 대중적 수요를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적 논란도 일었다. 가뜩이나 미흡했던 당시 도로교통 안전체계에서 무법자처럼 돌아다니는 킥보드의 위험성이 지적된 것이다. 더구나 일부 비행청소년들이 오토패드를 타고 경찰을 피해 다니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논란 끝에 오토패드 생산은 1921년 중단되고 만다.
엔진 등을 제조하던 미국 기업 쿠시맨은 미국 대공황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엔진이 팔리지 않자, 자사 엔진을 탑재한 값싼 모터 스쿠터를 제작해 재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탄생한 전동 킥보드가 1936년 출시된 ‘오토글라이드’다. 오토글라이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보다 저렴하면서도 연비가 좋아 경기침체로 호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미국이 교통법규를 엄격히 강화하고 청소년들의 운전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이면서 직격탄을 맞게 됐다.
다음 수십년 동안 자동차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전동 킥보드는 사람들에게서 잠시 잊혀젔다. 그리고 21세기의 첫 해, 2001년 세그웨이(Segway)의 등장으로 전동킥보드가 다시 레저용, 이동용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부드러운'이란 뜻을 지닌 'segue'로부터 유래된 세그웨이는 수평 센서가 있어 사용자가 무게중심을 앞뒤로 움직이며 운전한다.
개발 당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매우 흥분하며 'PC가 발명된 이후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호평을 남겼고 벤처투자자 존 도어는 ‘어쩌면 인터넷보다도 더’라며 이에 덧붙였다.
혁신적 퍼스널 모빌리티로 주목받은 세그웨이는 몇 년 동안 큰 관심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가격이 1,000만 원 대에 달해 일반인들이 사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이후 중국의 ‘나인봇’이 세그웨이 사를 인수하고 제품 가격이 저렴해졌지만 그 사이 가볍고 저렴한 다양한 퍼스널 모빌리티가 시장에 출시되고 있었다. 결국 세그웨이는 시장 경쟁력을 잃고 올해 7월 결국 제품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후 공유 서비스가 접목되면서 전동 킥보드 공유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2017년 ‘라임’을 비롯한 공유서비스 업체가 해외에서 등장, 지난해부터 국내에도 전동 킥보드 공유서비스 업체가 대거 등장했다. ‘킥고잉’, ‘씽씽’, ‘스윙’, ‘고고씽’ 등 국내외 스타트업이 몰려들어 20여개의 기업들이 공유서비스 사업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공유킥보드는 업체당 최소 100대에서 최대 5,000대에 이르고 서울시에만 공유 전동킥보드가 1만대 이상이 운행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전동 킥보드는 개인의 효용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교통 혼잡과 정체로 인한 손실 완화, 고령자와 신체적 약자의 차세대 이동수단은 물론 환경 보호, 고용 창출, 스마트 시티 추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빔’ 공동창업자 지앙 CEO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자동차의 1~2%에 불과하다. ‘부스티’를 선보인 BPM의 이호진 대표는 한 지역에서 킥보드를 100대 운영하면 100t 이상 탄소가 저감되는데, 이는 30년생 소나무 1만6,000그루를 심는 효과와 같다고 말했다.
전동 킥보드의 상용화는 새로운 직업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글로벌 1위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기업 라임(Lime)은 전동 킥보드를 수거하고 충전해주는 라임 쥬서(Juicers)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킥보드를 수거해서 충전 후 재배치하는 것이 이들의 주 업무다. 건당 4,000원 남짓의 수익이지만 새로운 부업의 한 종류로 등장하면서 미국에서는 연간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동 킥보드는 기존에 존재하던 직업의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최근 대리운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금이 떨어지자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전동 킥보드를 타는 대리운전기사가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에 급성장한 배달시장에는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는 일반인의 부업성 배달 서비스도 등장했다.
전동 킥보드는 빅데이터 활용 가치가 높아 스마트 시티를 가능하게 할 하나의 열쇠로도 통한다. 전동 킥보드 GPS 데이터를 중앙관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이용자가 자주 찾는 곳이나 대중교통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행 데이터를 가공하면 지방자치단체나 기업과 협업이나 매출 창출 또한 가능하다. 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골목 및 이면도로 정보를 획득하면 안전한 전동 킥보드 경로탐색 기술 획득도 가능하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로 스마트시티의 교통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전동 킥보드가 만들어 낼 스마트시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현재 스마트시티 국가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세종시를 방문해 한국교통연구원 국가혁신클러스터R&D 문영준 연구단장을 만났다.
Q. 스마트시티 국가시범사업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종시 5-1지구는 부산시 에코델타시티와 함께 국가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에 공식적으로 선정이 됐습니다. 현재 세종시 스마트시티는 SPC(특수목적법인) 선정 절차에 착수했고 H그룹과 L그룹 중 하나로 결정될 것 같습니다. 몇 조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며 2만여명이 살 수 있는 여의도 면적 정도의 크기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스마트 모빌리티, 스마트 에너지, 스마트 교육, 스마트 거버넌스 등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현재 SPC가 선정되고 나면 한 2년 내에 분양이 시작될 것입니다. 2025~26년도에 입주가 되고, 스마트시티가 어떤 모습이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움직이고 생활하는 지가 보여지는 건 2026~27년쯤이 될 것 같습니다.
Q. 완성된 스마트시티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2만명 중 6,000명 정도의 인구는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자가용 없이도 살 수 있는 구역을 만들고 구역 내에서 공유차, 자율주행 셔틀, 퍼스널 모빌리티와 같은 방법으로 수송과 통행을 할 수 있는 도시가 됩니다. 대중교통 체계와 공유교통 체계, 퍼스널 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죠.
Q. 전동 킥보드와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요?
자가용 수요를 줄이기 때문에 4차로 도로가 2차로 도로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 전의 가솔린과 디젤로 운행되는 자가용 이용이 감소하기 때문에 탄소로 인한 공해 배출이 최소화될 것입니다. 필요한 주차장 면적도 줄어들어 해당 면적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차 한 대 주차할 공간에 전동 킥보드는 10대를 주차할 수 있거든요. 남아있는 도로는 점점 지능화 돼서 도로에 센서와 충전 인프라가 깔리고, 다양하게 많은 정보화 시설이 들어갈 겁니다. SOC들이 디지털화하면서 정보화되고 언제 어디 있든 정보를 받고 공유하고 충전하는 게 가능한 체계가 될 것입니다.
Q. 50년 뒤의 미래 모빌리티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현재 우리가 몰고 다니는 자가용이 지상으로만 다닐 건가. 드론카, PAV(personal air vehicle)처럼 공중으로 뜰 거고요, 자율주행기능이 들어갈 거고, 날아가는 자전거도 나올 거고. 굳이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가 있는가. 초고층 빌딩에 있는 사람끼리 만날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땅에서 만날 건가 아니면 PAV를 타고 제 3의 공간에서 만날 건가. 공간 활용이 극대화되면서 퍼스널 모빌리티가 극대화되는 형태의 서비스가 이루어질 겁니다.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크게 늘면서 규제 미비에 따른 안전사고 등 과제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청으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동킥보드에 대한 민원은 7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3년간(2016~2019년) 약 345%나 증가했다. 전동 킥보드가 미래 모빌리티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스마트모빌리티협회 PM분과 회장 에코아이(이브이샵) 양해룡 대표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소개했다.
“전동 킥보드가 안전하게 주행하기 위해선 지금의 자동차 중심 도로 체계에서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에 갔을 때 느꼈던 건, 차도에서 인도로 들어가는 구간에 턱이 없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낮긴 하지만 대부분의 도로에 턱이 존재합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이를 정책적으로 없앤 거죠. ”
문 연구단장은 전동 킥보드 등 이용자가 늘면 자연스럽게 안전성도 강화될 것이라고 봤다.
"자가용 수요가 줄어든 대신 전동 킥보드 등 이용자가 늘면 시민들끼리도 서로 간에 조심을 하는 구조가 되겠죠. 그렇게 되면 더 다양해지고 시장도 더 커질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안전에 대한 규제와 제도가 저속, 도심형 기반으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교통연구포럼(OECD ITF)에 따르면 극대화된 공유 서비스가 실현된다면 현 자동차 대수의 3%만으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전동 킥보드가 대중교통을 대치하는 이동수단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도심 내 자가용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모빌리티의 변화는 인류의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10년 후, 50년 후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전개됐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김수진 인턴기자 wsjku@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