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김세영, 화려함과 꾸준함 두 토끼 몰고 ‘메이저 28전29기’

KPMG 여자 PGA 65년 역사상 최소타로 메이저 한풀이
30분 늦잠 ‘사고’에도 ‘좋은 연습이라 생각하자’
초반 어려운 파 세이브 뒤 버디 7개 맹폭, 난코스서 홀로 두 자릿수 언더파
박세리·박인비도 못 이룬 ‘6년 연속 시즌 1승 이상’ 꾸준함도 돋보여
14언더 김세영 이어 9언더 박인비 준우승

김세영이 12일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퍼트를 넣은 뒤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은 캐디 폴 푸스코. 데뷔 때부터 6년간 쭉 함께하고 있다. /뉴타운스퀘어=USA투데이연합뉴스

김세영(27·미래에셋)은 마음이 급했다. 분명히 오전5시30분으로 휴대폰 알람을 맞춰놓고 잠든 것 같았는데 알람 소리에 깨어보니 6시였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머리카락을 땋는데 이게 또 계속 꼬이는 바람에 시간을 더 버렸다. 허겁지겁 숙소를 나와 대회장으로 차를 몬 김세영은 먼저 도착한 캐디에게 주차를 부탁하고는 서둘러 연습장으로 향해야 했다.

가벼운 연습 뒤 1번홀 티잉 구역에 섰을 때도 두근두근 뛰는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김세영은 이때 이렇게 마음먹었다고 한다. ‘경기 중에도 이렇게 뜻밖의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좋은 연습 했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메이저 사냥에 나선 김세영은 샷 실수가 나온 2번홀(파4)에서 먼 거리 파 세이브에 성공한 뒤로 메이저 첫 우승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역사상 최대 상금 대회를 포함해 통산 10승을 올렸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던 김세영이 마침내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6년 차 김세영은 12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애러니밍크GC(파70)에서 끝난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합계 14언더파로 2위 박인비(9언더파)를 5타 차로 제치고 우승상금 64만5,000달러(약 7억4,000만원)를 받았다. 시즌 첫 승이자 통산 11승째로 메이저대회 29번째 출전 만에 ‘메이저 퀸’ 타이틀을 얻었다. 6시즌 동안 매년 1승 이상씩을 거둔 꾸준함도 놀랍다. 6년 연속 우승 경험은 박세리·박인비도 못한 기록이다.


2타 차의 넉넉지 않은 리드를 안고 출발했는데 한 번도 동타나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넉넉하게 우승했다. ‘평범한’ 우승을 거부하는 ‘빨간 바지 마법사’ 별명처럼 김세영은 이날도 빨간 바지를 입고 여러 기록을 남겼다. 보기 없이 버디 7개를 몰아쳐 이 대회 18홀 최소타 타이인 63타를 작성했고, 최종합계 266타로 65년 대회 역사상 최소타 신기록을 세웠다. 시상식에서 “메이저 우승 없는 선수 중 최고의 선수가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사회자의 말에 김세영은 “나 자신을 이긴 느낌”이라며 감격해 했다.

지난해 시즌 최종전에서 여자골프 최대 우승상금(150만달러)을 거머쥔 이후 11개월 만에 또 일을 낸 김세영을 미국 골프채널은 “거장다운(masterful) 경기력으로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페어웨이 안착률, 그린 적중률, 총 버디 수(23개) 모두 출전자 중 최고였다”고 극찬했다. 앞 조에서 추격했던 박인비도 “정말 ‘언터처블’ 수준이었다”고 선선히 패배를 인정했다.

워낙 긴 코스에 핀 위치도 극도로 까다로웠던 고약한 시험대에서 이날 김세영의 드라이버는 평균 278야드나 나갔고 아이언은 그린을 세 번밖에 놓치지 않았다. 퍼트는 단 26번이면 충분했다.

3타 뒤진 4위로 출발한 박인비가 초반부터 맹렬하게 쫓아왔지만 김세영은 경기 후반까지 2타 차를 유지하며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13번(파4), 14번홀(파3)에서 연속 버디로 4타 차로 달아나며 우승을 예감하더니 16번(파5)·17번홀(파3) 버디로 쐐기를 박았다. 필요한 순간마다 홀을 찾아 들어간 퍼터는 지난해 최종전에서 끝내기 버디를 안긴 바로 그 퍼터였다. 시즌 상금과 올해의 선수 포인트, 평균타수 부문에서 모두 2위로 올라선 김세영은 “셋 다 못 가져본 타이틀인데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이뤄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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