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보림사 내 주요 전각인 대적광전은 6·25 전쟁으로 불에 타 주민들의 손으로 새로 지어졌다.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는 장흥 내 여러 명소 중 첫 손에 꼽히는 지역 대표 문화재다. 통일신라 시대 헌안왕 4년(860)의 권유로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한 사찰로 참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 종파인 선종이 국내에서 처음 정착한 곳이다. 선종은 조계종의 뿌리이기도 하다. 보림사는 오랜 시간 번창하면서 20여개나 되는 전각을 갖춘 대사찰로 거듭났지만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과 잇단 화재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숱한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현재의 보림사는 6·25전쟁으로 천왕문과 사천왕상을 제외한 대부분이 소실된 뒤 새로 지어진 것들로 채워져 있다.
보림사는 평소 불자와 여행객들이 끊이질 않는 곳이지만 코로나19로 대면 법회가 중단되면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림사는 장흥을 빠져나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장흥에서 나주 방면으로 23번 국도를 따라가다 820번 지방도로를 올라타면 얼마 가지 않아서 도착한다. 일주문을 지나 처음 마주하는 사천왕문에 자리하는 사천왕상은 국내 현존하는 목조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제1254호로 지정돼 있다. 사찰 내에는 3층 석탑 및 석등(국보 제44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77호), 동부도(보물 제155호) 등 국보급 문화재가 가득하다. 경내가 전각들로 꽉 들어찬 일반 사찰과 달리 석탑과 석등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져 있어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림사 뒤 야생차밭에서 따온 차잎을 덖어 엽전 모양으로 만든 뒤 말리는 과정. 청태전은 찌고 말리고 발효하는 등 제다(製茶) 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신 깊은 맛을 낸다.
보림사에 왔다면 비자나무 숲을 꼭 들러봐야 한다. 보림사를 둘러싼 가지산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500여그루의 비자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자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는 오솔길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좁고 호젓한 흙길이다. 코스 중간중간 의자가 마련돼 있고 초입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완만한 평지여서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다. 서둘러 걷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어야 숲이 지닌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숲을 찾는 이들이 늘었지만 거리두기가 가능한 수준이다.
보림사 가지산 비자나무 숲에서 자라는 야생차나무에 꽃이 피었다. 야생차나무는 10월에서 12월 사이 꽃을 피운다.
비자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 사이사이로 잡풀이 무성한데 자세히 보니 야생차나무다. 이 길이 ‘청태전 티로드’라고 불리는 이유다. 보림사는 창건 당시부터 전통차를 만들어왔다. 청태전(靑苔錢)은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의 차’라는 뜻으로 시중에 파는 차보다 맛이 순하고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동전 모양과 비슷해서 ‘전차’ 또는 ‘돈차’로 불리다가 일본에 의해 처음 알려지면서 중국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보림사의 차 맛은 한국의 명수로 지정될 만큼 유명한 경내 약수로 내려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지역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장흥다원이나 평화다원에 가면 1,000년 넘게 이어온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글·사진(장흥)=/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