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을 확인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왼쪽), 전세난을 실제로 경험했다는 온라인 글. /부동산 커뮤니티 캡쳐
집값과 전셋값이 끝을 모르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전세난이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 시내 전세 매물 하나에 많게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내집 마련에 대한 불안과 좌절을 담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한 임대차보호법을 내놓은 이후 임대인들이 전세를 거둬들이거나 ‘실거주’를 주장하면서 전세매물이 줄고 가격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세시장 안정을 위한 추가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느끼는 서민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 0.08% 올라, 67주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일부 단지는 두세달 사이에 전셋값이 2억~3억가량 오르기도 했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매물을 확인하는 유례없는 경험을 했다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네티즌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늘 오전에 친정오빠 전셋집을 보러 같이 다녀왔는데 9팀이 줄서서 들어갔다”며 “심지어 조건이 현재 세입자가 (들어올 시기가)11월 말일지 12월 초, 중순일지 정해지지 않아서 무조건 다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요즘 전세 씨가 말랐다 해도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지금 이사 준비하시는 분들 정말 힘드시겠다. 정말 어마무시하다”고 덧붙였다.
집값을 정상화하라는 국민청원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 12일 올라온 ‘문재인 정부가 폭등시킨 집값을 원상회복시켜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게시 하루 만에 4,588명의 동의를 받았다.
글에서 청원인은 자신을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이라고 소개한 뒤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피땀 어린 노동의 결실을 폭등한 집값과 전세가로 갈취당하는 것을 중지시키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고 청원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폭등한 것은 정부가 기획하고 집행한 집값정책의 결과”라며 “청와대와 민주당은 투기꾼의 과욕과 조작 때문에 집값이 폭등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국민을 호도하는 거짓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모든 국민은 투기꾼이 됐다. 살림 걱정에 십 원 한 푼까지 아껴 쓰던 가정주부도, 직장과 일에 몰두해야 할 20~30대 젊은 세대도, 부동산 카페 회원이 되고 투기가 불붙는 지역을 찾아다니는 투기꾼이 됐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그러면서 정부 정책의 한 예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을 언급했다. 청원인은 “가공할 수준의 세금혜택을 임대사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 대도시마저 노다지 투기판으로 전락시켜 버리고야 말았다”며 “전문투기꾼뿐 아니라, 일반 국민조차 주택투기에 몰빵하게 만드는 단군 이래 최대 ‘투기조장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청원인은 “숲속의 새들도 제집을 짓고 살고, 냇가의 수달도 제집을 짓고 산다. 하지만 촛불 정부라던 문재인 정부에서 우리 국민은 내 집 하나 찾지 못하고 웅크린 채 밤을 지새운다”며 “촛불처럼 따뜻할 줄만 알았던 우리 가족의 꿈과 미래가, 투기와 자본에 약탈당하고 짓밟힌다”고 탄식했다.
이어 “잠을 청한들 무엇 하랴, 밤이슬이 발목을 적시고, 설움이 이불을 적신다. 아내가 울고 가장은 탄식 한다”며 “폭등한 집값, 구름 위의 전셋값, 신선들이 사는 곳이 수도권인가, 서민 살 곳은 온데간데 없어졌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김현미 국토부장관과 박선호 국토부 차관 등 주택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책임자들을 즉각 파면할 것을 요구하면서 “무주택 국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마음이 있다면 올해 초 대통령의 약속대로 집값을 임기 초 수준으로 원상복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일 ‘개천의 용의 집은 결국 개천(전월세)인가요? 노력으로 집 살 수 있는 사회로 돌아갈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다른 청원도 올라왔다. 청원인은 “일분일초 아껴가며 열심히 일하고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집값을 따라가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 갈수가 없는 이 현실에 큰 좌절감을 느낀다”며 “아 나는 그냥 일개미일 뿐이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는 여왕벌이 될 수 없었는데... 추운 겨울이 되서야 알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4년 전 8억하던 집이 너무나 부담되어 망설였던 집이, 20억에 실거래가 되었다”며 “10억...가만히 앉아서 10억이란 자산이 증식된 그들과 그 시간을 놓친자들은 이제 노력하고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계급이 생겨버렸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청원인은 “자라나는 후손들을 위해 솔직한 대답을 원한다”며 “정부는 집값을 잡을 의지가 있으신가”라고 물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