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룰’ 적용해보니… 15개 대기업 중 13곳 감사선임권 外人 손에

소액주주·기관 12%만 동조하면
외국인이 의결권 25% 이상 확보
손경식 회장, 14일 與의원 만나고
15일 정책간담회엔 대기업 총출동
재계 ‘독소조항’ 해소 위해 총력전

손경식(왼쪽 두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을 방문한 이낙연(〃 세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경영계는 기업규제 3법이 해외 투기세력의 경영권 공격을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권욱기자

상법 개정안의 핵심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3%룰(감사위원 분리선임 시 대주주 지분율 3% 제한)’을 적용하면 국내 대기업 15곳 중 13곳의 이사회에 해외 헤지펀드가 추천하는 감사위원이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되는 데 비해 외국인 주주들이 통상적인 수준으로 헤지펀드 제안에 동조하면 이들이 의결권의 25%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은 13일 국내 주요 대기업 15곳을 대상으로 3%룰을 적용해본 결과 감사위원 분리선임 시 헤지펀드의 주주제안에 외국인 주주들의 53.1%가 동조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LG화학·SK텔레콤 등 13곳의 기업에서 전체 의결권의 25%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고 밝혔다. 53.1%는 지난해 현대자동차 주주총회 당시 현대차를 공격했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동조했던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다.

이마저 국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이 모두 헤지펀드 제안에 반대하는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국내 소액주주·기관투자가 중 12%만 헤지펀드 제안에 동조해도 15개 기업 모두에서 외국인과 헤지펀드가 전체 의결권의 25% 이상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별로 보면 외국인 투자가는 삼성전자의 경우 36.3%, SK하이닉스 31.3%, 기아자동차 30.4%, LG화학 28.7%의 의결권을 확보하게 된다. 외국인 주주들이 ‘통상적인’ 수준으로 헤지펀드의 감사위원 추천에 동조하면 13개 기업에서 이들의 의결권 비중이 25%를 넘어서는 것이다. 통상적인 수준이란 지난해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사외이사 추천에 실제 동조한 외국인 주주 비율(53.1%)이다. 25%는 감사위원이 실제 선임될 수 있는 기준선으로 꼽혀 국내 대표 기업들에서 ‘아군 작전회의에 적장이 참석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위원 선임 등 주주총회 보통결의 요건은 발행주식 총수의 25%와 출석주식 과반의 찬성이다. 문제는 ‘15곳 중 13곳’마저도 국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 중 단 한 곳도 해외 헤지펀드의 제안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보수적인’ 계산에 근거한 결과라는 점이다.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 중 12%만 헤지펀드 제안에 동조해도 15개 기업 모두에서 외국인이 의결권의 25% 이상을 확보한다.


만약 국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이 외국인 주주와 같은 53.1%의 비율로 헤지펀드 쪽에 결집하면 15개 기업 모두에서 전체 의결권의 50% 이상을 외국인들이 확보하게 된다. 현재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되고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기관투자가들은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기업을 들여다볼 수 없어 주로 해외 헤지펀드에 동조하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따르는 실정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송원근 연세대 객원교수는 “지난 2019년 당시 엘리엇의 제안에 외국인 주주들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였음에도 53.1%나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3%룰이 시행되면 대주주의 의결권이 3%에 묶이는 만큼 외국인 지분은 반사이익을 보게 돼 외국계 헤지펀드 추천 인사가 국내 대표 기업 이사회에 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차 주총 당시 엘리엇은 사외이사 후보 3명을 추천했다. 그중 한 사람이 캐나다 수소업체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이었는데 이후 이 회사의 대주주가 중국 웨이차이파워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차가 20여년간 공을 들인 미래 먹거리 수소 기술이 중국 경쟁업체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갈 뻔했던 것이다.

KIAF이 분석한 15개 기업은 글로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해외 경쟁기업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대표 기업들이다. 그야말로 ‘졸면 죽는’ 해외 시장에서 치열한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안에서, 그것도 경영을 감시하는 감사위원에 외국계 헤지펀드가 추천하는 인사들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정부 여당이 열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정만기 KIAF 회장은 “3%룰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대부분의 한국 대표 기업들이 외국 헤지펀드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감사위원을 꼭 분리해 선출해야 한다면 최소한 의결권 제한은 두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들은 ‘독소조항’ 해소를 위해 총력전을 펼칠 예정이다. 14일에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더불어민주당 ‘공정경제 3법’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진다. 15일에는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이 주관하는 정책간담회에 삼성경제연구소,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SK경영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4대 그룹 연구소가 참석한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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