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바닥 딛고 비상한 하워드 슐츠의 삶과 경영

■그라운드업-하워드 슐츠·조앤 고든 지음, 행복한북클럽 펴냄
슐츠 스타벅스 명예회장 8년 만의 신작
‘불안과 수치’ 불우했던 어린 시절 최초 공개
밤이면 불법 도박장이 됐던 좁은 임대아파트
저임금 일자리 전전하다 부상에 해고당한 父
→‘머물 고픈 공간’ 추구·직원 복지 등에 영향

하워드 슐츠(오른쪽)가 지난 2017년 스타벅스를 떠나던 날 그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기 위해 모인 수천명의 스타벅스 파트너들과 신임 CEO 케빈 존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스타벅스(조슈아 트루히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미국의 광경은 아름다운 환영이다. 진실은 땅에 있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기적처럼 놀라우면서 동시에 평범하고 엉망진창인 자질구레한 일상에 있다. 한 마디로 진창에 있다.’

그 진창의 밑바닥,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 임대 아파트 계단에 앉은 깡마른 소년은 저 너머의 큰 세상을 꿈꿨다. 밤이면 불법 도박장이 됐던 비좁은 집, 무기력한 아버지, 불같은 남편과 녹록지 않은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어머니의 한숨. 집은 ‘불안과 수치의 장막’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집 밖의 계단은 소년의 피난처요, 그의 상상력이 자라난 장소였다. 훗날 ‘초록색 인어 로고’로 바닥을 딛고(ground up) 전 세계로 날아오른 이 소년은 세계적인 경영가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명예회장이다. 슐츠가 8년 만에 내놓은 저서 ‘그라운드 업’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고백하고, 당시의 경험이 어떻게 스타벅스 기업 문화에 녹아들었는지를 전한다. 그동안 여러 경영서와 자기계발서를 통해 알려진 성공 신화와는 다른 측면에서 슐츠와 스타벅스를 바라볼 수 있다.



시애틀 파이크플레이스마켓에 개점한 첫 스타벅스 매장/사진=스타벅스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 이 다짐은 슐츠의 인생과 그의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교 중퇴 후 평생 다른 이들이 꺼리는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한 슐츠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겐 (소파에 누워 있는)‘가로인간’, 외할머니에게는 ‘놈팡이’로 불리는 야망과 의지가 꺾인 인간이었다. 아들에게 채무자의 전화를 대신 받게 하고, 이웃에게 대신 돈을 빌려오라며 채무 각서를 손에 쥐여 주던 남자, 배운 것이 없어 크게 다친 후엔 해고 말곤 받을 것이 없는 존엄성을 거세당한 노동자가 슐츠 기억 속의 아버지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1986년 차린 커피 회사이자 스타벅스 인수의 토대가 됐던 ‘일지오날레’의 선언문에 반영됐다. ‘우리가 운영하는 커피 바는 직원들에게 일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직원에게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심리적 보상을 제공하고, 서로 개인의 성장을 돕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슐츠는 “아버지가 일할 기회를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종류의 기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도 모든 직원에게 ‘빈스톡’이라 불리는 스톡옵션을 지급하고 파트타임 직원에게까지 건강보험을 확대했다. 회사가 비용 절감에 몰두할 때 미국 전역 7,100개 매장을 하루 동안 일제히 닫고 직원들에게 에스프레소 추출 교육을 했다. 그렇게 사원들로 하여금 ‘존중받고 있다’는 기쁨과 ‘나는 회사에 필요한 존재’라는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스타벅스 직원들은 2013년 미국 연방 정부의 셧다운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의회에 전달했다./사진=스타벅스(존 해링턴)

슐츠는 기업이 사회 변화에 앞장서고 정치권에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는 경영인이다. 오바마 정부 시절 부채 문제로 미 연방정부 폐쇄(셧다운) 사태가 빚어지자 수도 워싱턴 DC 소재 매장 120곳의 커피 컵에 ‘모두 함께(Come together)’라는 문구를 새겨넣어 여야 협치를 촉구하고, 직원들이 셧다운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모아 의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슐츠의 다짐과 스타벅스를 통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은 ‘아버지 세대의 미국’을 바꾸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자녀 세대의 고군분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슐츠는 “스타벅스가 걸어온 여정은 미국이 걸어온 여정을 투영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2만 7,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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