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젠가 꼭 지리산 투어를 다녀오겠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다녀오셨을 테고, “좋았다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은 데다 멀어서 선뜻 다녀오긴 어려운 지역이다보니 그런 소망이 불타오르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리산은 우습고 부산, 거제에 막 당일치기로 다녀오시던데 저는 이제 늙고 쇠약해서 그런 체력이 혹시나 있다면 생명 연장에 보태고 싶습니다.
어쨌든 드디어 저도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가는날, 오는날의 체력 저하와 이로 인한 일상 파괴(약 일주일)를 막기 위해 통 크게 2박 3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대목! 혼자 갔다왔습니다. 나홀로 투어는 심심해서 안 하는데 왠지 한번쯤은 그래보고 싶더라구요. 친구 없어서 그런 거 아.니.라.구.요!!!!!
오랜만에 꺼낸 명짤
각자 여행에 관련된 취향들이 있죠. 여행지에서의 우연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저는 후자입니다. 특히 부모님과 같이 가는 효도 여행이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즐거운 여행이어야 한다! 싶을 때는 가이드St.로 표까지 만들곤 했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안 하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미리 동선과 숙소는 대강 짜 놓고 출발했습니다. 첫날에는 문경까지만 가서 숙소에서 쉬고, 둘째날엔 본격적으로 지리산을 한 바퀴 돌고, 셋째날엔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는 그랜드플랜이었죠.
다행히 날씨가 좋았습니다. 혼자 집을 나서서 수도권을 거의 벗어났을 때쯤 점심을 먹고,
충청도에 들어서선 카페도 들렀다가,
길 가다 있길래 들렀는데 지역 핫플레이스였던 ‘커피 단월’.
이제 첫번째 경유지인 경북 예천 회룡대로 향합니다. 이렇게 생긴 회룡포를 조망하고 싶어서 갔는데...
/예천군 홈페이지
하필 제가 간 날 회룡대(전망대)는 수리 문제로 입장이 금지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룡대에 가려진 회룡포 언저리만 볼 수 있었습니다.
한적한 회룡대 입구와 봇짐을 둘러멘 W800
회룡포 조망에는 실패했지만 워낙 근처 길들이 좋아서 크게 실망하지 않고 이제 숙소로 향합니다. 뭘 했다고 이제 벌써…?라는 의문이 드는 독자님들은 서울에서 회룡포까지 이미 5시간(점심시간 및 티타임 제외)을 달려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시간쯤 유유자적 달려서 문경 숙소에 도착. 문경새재쪽이 아니라 속리산 쪽의 한 리조트로 잡았는데 너무 싼 가격이 좀 수상했지만 실제로 가보니 매우 훌륭했습니다. 넓고,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깔끔하고, 편의점 식당 맥주집 카페 등등 있을 건 다 있더군요.
다만 이 숙소는 속리산국립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만큼 읍내와는 거리가 꽤 됩니다. 그래서 한 번 들어가면 어지간해선 안 나오게 되는 곳이죠. 언제 한번 엠티라도 가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리조트 내에선 문경 지역 ‘가나다라 브루어리’의 캔맥주를 팔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투어 후 음주는 꿀이니까요.
그리고 드디어 둘째날. 서울에서 빠져나가는 과정 없이 마음껏 바이크를 타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너무나 상쾌했습니다. 숙소에서 지리산까지는 또 한 시간 정도. 날씨도 너무 화창하고, 한적한 시골길도 최고였습니다. 그냥 가면 너무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지역 라이더 분들이 많이 가시는 듯한 라제통문을 들러봅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이죠. 자연 그대로인 듯한 저 통로를 빠져나가면 왠지 타임슬립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라제통문으로 향하는 길 역시 매우 좋았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 뭐 이런 표지판이 붙어있었던 것 같네요.
다시 바이크를 돌려 이제 드디어 지리산. 말로만 듣던 지안재, 오도재는 코너가 너무 빨리 끝났지만 와본 것만으로도 너무 씐납니다. 오도재까지 거치면 지리산제1문이 나오는데, 바로 옆에 주차장과 전망대, 조그만 매점이 있어서 쉬어갈 수 있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정령치로. 정령치 쪽은 와인딩 코스가 좀 더 긴데, 정작 저는 혼자 달리다가 괜히 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매우 저속으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제 W800도 제대로 사진을 좀 찍어줍니다. 어디가 제대로냐고 물으실 분들은 쉿.
진지한 질문. W800은 왜 이렇게 예쁠까요? 몇 년 타다 기변하겠지 싶었는데 여전히 그럴 마음이 안 듭니다.
혼자 다니면 아무래도 말을 거시는 분들(아...아버님들...물론 저도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만...)이 많으십니다. 지리산에서도 부부 여행객, 드라이브 나온 근처 마을 주민분들과도 어디서 왔냐,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느냐, 요 근처 어디어디가 좋다 등등 많은 질문을 받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박투어로 2, 3일이나마 온전히 혼자서만 있다 보니 그 고독이 참 달달하고 홀가분합니다. 사람도 차도 적은 동네다 보니 세상에 아무도 남지 않은 듯한 적막이 느껴집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고 때 되면 커피도 마시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스스로를 잘 대접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도 아무거나 안먹고 맛집 찾아다님. 원주 알탕맛집 ‘까치둥지’. 1인분은 주문 불가라 2인분 주문하는 패기!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알 수 없는 게, 혼자서 즐겁다가도 친구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조금씩 사람 목소리가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고독은 누군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을 때나 달콤한 것 같습니다.
지리산 투어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복귀할 뻔했는데, 강원도 인제 모처에서 친구들과 모여 또 1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친구들은 캠핑러, 캠핑을 선호하지 않는 저는 바로 옆에 딸린 펜션에서요. 숙소에서 원주 알탕 맛집을 거쳐 아름다운 인제 자작나무숲 가는 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부츠 벗고 쓰레빠 갈아신을 때 그 시원함....알죠?
이제 친구들이 도착할 때까지 내린천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읽던 책을 마저 펴듭니다.
근데 사실 오지게 별로였던 책...ㅠㅠ
성공적인 지리산 투어에 고무된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나홀로 투어를 감행하게 됩니다. 궁금하신 분은(제발 궁금해 해달라!) 두유바이크 112회에서 만나요~
**오랜만에 대문사진(?)을 바꿨습니다. 모토포토(제 책 참조)의 바이크광인이 미친 자의 기운을 사진에 불어넣어주더니 대문사진으로 쓰라며 글자까지 박아주더군요...그래서 바꾸기로 했습니다.
THANKS TO : 류효림 A.K.A 바이크광인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