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사회주의 의료방식의 가장 큰 수혜자인 미국인 환자가 지난 5일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값비싼 치료를 받던 중 작심한 듯 트윗을 날렸다. 트윗을 날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의 광기 어린 트윗 중 유독 의료전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다. “병력자 보호조항을 지키려면 투표하라”는 당부였다. 늘 그래 왔듯 이게 트럼프의 빈정거림인지 아니면 그의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바마케어보다 한결 낫고 비용 또한 저렴한 대안을 갖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그런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트럼프 본인이 더 잘 안다. 하지만 현 행정부가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오바마케어(ACA)에 기존병력자 보호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까. 공화당이 수용 가능한 ACA 대체안, 그중에서도 기존 병력자 보호조항이 포함된 대체 법안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대안 마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가 뒤늦게나마 깨달은 걸 것일까. 그건 더더욱 분명하지 않다.
어쨌건 이번 대선 투표결과에 따라 미국 의료제도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오바마케어를 폐기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이로 인해 수천만명의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을 잃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 바이든이 승리하면 미국의 의료제도는 이와 정반대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의료보험 적용대상은 대폭 확대되고 중산층 가정이 매월 내야 하는 부담금은 줄어들 것이다.
바이든의 의료 관련 공약이 지금까지 별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에 유권자 중 상당수는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가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트럼프에 대한 신임투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바이든의 경쟁자가 의료제도의 급진적 변화를 주창했기 때문에 승자인 바이든은 당연히 라이벌 후보의 과격한 공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의료보험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바이든이 의료보험의 점진적인 변화를 제안한 데 비해 지지자들은 훨씬 통 크고 속도감 있는 변화를 희망한다. 한 기관의 추산에 따르면 바이든의 의료보험 개혁이 이뤄질 경우 1,500만명에서 2,000만명의 미국인들이 추가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보험료, 특히 중산층 가정의 보험료가 크게 줄어든다.
바이든의 의료보험 관련 제안 가운데 관심을 끌었던 것은 민간보험 대신 공공 의료보험과 유사한 보험을 개인이 가입하는 ‘공공 옵션(public option)’ 제도다. 이 제도는 정부가 주도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와 유사한 ‘단일보험자체계(single payer system)’로 향하는 첫걸음일 수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플랜 또는 바이든케어는 직장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인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정부의 의료보험 지원대상을 대폭 늘릴 것이다.
2010년 의회를 통과한 오바마케어는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상당수 가정은 보험료와 분담금 부담이 컸다. 하지만 오바마케어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의 추이가 바뀌자 정치권도 보조를 맞췄다. 대체재원 없이 대규모 감세를 밀어붙이려는 공화당에 대응해 민주당은 오바마케어를 더욱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바이든플랜은 정부 보조금을 늘리는 한편 보조금 혜택을 못 받는 중산층 가정의 소득 상한을 높이기로 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경비가 필요하다. 비영리단체인 CRFB는 바이든플랜 실행에 향후 10년간 총 8,500억달러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많은 액수이기는 하지만 2017년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이든플랜은 저소득 미국인들을 자동으로 공공옵션에 포함한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이 조항은 대단히 중요하다. 현행 의료보험제도의 최대 결점은 제도 자체가 지나치게 복잡해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보다 간단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들을 자동으로 지원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바이든플랜은 장기치료와 농촌건강 및 정신건강을 위해 상당 수준의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오바마케어를 없애려는 트럼프의 노력이 미국의 의료보장제도에 초래할 급격한 변화와 비교하면 바이든플랜에 따른 변화는 그리 급진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바이든플랜은 월척에 가까운 ‘빅딜’이 될 것이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전 국민 의료보장제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바이든플랜이 현실화하면 미국 역시 이에 근접할 수 있다. 보험 적용대상은 확대되고 비용은 낮아지며 의료의 질은 개선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병력자 보호를 포함한 의료보장제도 개선을 위해 우리 모두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만약 트럼프가 이긴다면 미국인들은 병력자 보호조항을 잃을 뿐 아니라 보험료 급등까지 목격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바이든이 이긴다면 미국인들은 이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추가로 보험을 갖게 될 것이며 보험료 인하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