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과천의 예술놀이마당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푸른 숲 속의 만발한 하얀 꽃. 기다란 줄기 위에 핀 하얀 원판이 바람에 출렁거린다. 언덕처럼 경사진 대지 위에 수평으로 늘어선 설치작업. 하얀 물결처럼 보인다. 달밤의 은은한 월광과 이슬비나 눈 내리는 날의 독특한 풍광은 잔잔한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야외조각장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다.

과천관은 수려한 산속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야외공간은 조너선 브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이나 곽인식의 거대한 원형 돌탑 등 80여 점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일반적으로 조각공원은 고정돼 있는 시각 현실을 특징으로 한다. 한번 세운 조형물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치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때는 하나의 봉안물처럼 군림하기도 한다. 환경은 계속 바뀌는데 조각공원의 설치물들은 왜 그렇게 비슷한 발상법으로 심심하게 자리할까. 감동 부재의 조각공원.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과천관의 야외는 새로운 탄생을 꿈꾸고 있다. 변화를 위한 장단기 계획을 세우면서 실행 가능한 일부터 하나씩 처리하고 있다. 그런 계획의 일환으로 ‘예술놀이마당’을 추진하고 있다. 한마디로 감동과 놀이 기능이 함께하는, 조형물의 마당을 그리고 있다. 관객참여형의 작품. 어린이들이 작품 안에 들어가 놀면서 쉴 수 있는 조형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참여해 즐기면서 새로운 시각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마당, 바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이번 가을 과천관은 하얀 물결의 건축프로젝트 ‘과.천.표.면’을 비롯해 전국 여러 곳에서 가지고 온 여러 색깔의 흙으로 꾸민 ‘예술가의 밭-산고랑길’이나 김주현의 ‘세 개의 기둥’ 같은 참여형 조형물을 새로 선보였다.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던 작품이 아니라 작품 안에 들어가 작품과 일체가 돼보는 새로운 공간이다. ‘밭’에서는 꽃나무를 심거나 작은 경작을 할 수도 있다. 흙의 소중함과 자연의 숨결을 직접 체험하면서 도시의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될 것이다.

과천관의 야외공간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 하지만 복병들이 숨어 있어 문제다. 서울대공원 안에 위치한 미술관은 그린벨트 지역이라 항구적인 건조물의 신축이나 조형물 설치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데다 꾸불꾸불 산길을 돌아가야 하는 접근성이 바닥 수준의 미술관이라고 원성도 많다. 그러나 제약이 많다고 해서 가족단위의 하루 소풍길을 만들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다. 과천관은 어린이 가족 중심의 미술관, 자연 속의 생태미술관이라는 새로운 특성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충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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