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내외 금 투자가 활황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한국거래소 금 선물은 상장 이후 5년간 단 한 건만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라는 강력한 대체시장의 존재 때문에 투자자들이 구태여 한국거래소에서 금 선물을 거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금 관련 상품보다 진입 규제가 강하다는 점도 거래를 꺼리게 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최근 국내 금현물 시장이 활기를 띠는 만큼 이와 연계된 금 선물 시장도 나란히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세제 혜택 등 육성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 금 선물은 지난 2015년 11월 상장한 이후 현재까지 1회 거래됐다. 지난 2019년 10월2일 600만원 규모의 거래 계약이 이뤄진 것이 전부다. 최근 저금리 환경이 고착화하면서 국내외에서 금 거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아쉽다는 평가다. 가령 세계에서 주로 거래되는 금 상장지수펀드(ETF) 중 하나인 ‘아이셰어즈 골드 트러스트(IAU)’의 올해 일평균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41.92% 늘었으며, 마찬가지로 글로벌 금 ETF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SPDR 골드 트러스트(GLD)’도 같은 기간 거래량이 39.9% 증가했다.
지난 2015년 한국거래소는 기존의 미니 금 선물 제도를 개편해 새 금 선물을 내놓았다. 2014년 개장했던 한국거래소 금 현물 시장에 연동되는 토종 금 선물 시장을 조성한다는 취지였다. 런던금시장협회(LBMA)의 금 공표 가격에 맞춰 최종 결제 가격을 내놓았던 미니 금 선물과 달리, 새 금 선물에선 KRX 금 현물 가격에 연동해 최종 결제 가격을 산정한다.
그러나 올해 KRX 금 현물이 역대 최다 거래량을 경신하는 등 흥행한 것과 달리 금 선물은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연초부터 지난 16일까지 KRX 금 현물 시장(1kg 기준) 일평균 거래대금은 71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3억8,400만원)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7월28일엔 하루에만 404억9,600만원어치가 거래돼 KRX 금시장이 문을 연 이후 가장 많은 거래대금을 기록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미국 CME같이 강력한 금 선물 ‘대체 시장’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국내 금 선물 시장이 주목을 받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세계에서 금이 달러화로 거래되는 일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화를 기본 단위로 삼는 국내 금 선물이 성장하는 데엔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위험분산) 수단으로 쓰이는 일이 많아 거래 화폐와의 연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이고 상하이·홍콩에서도 금 선물을 거래할 수 있는데 굳이 우리나라 금 선물 시장에 투자자들이 들어오려고 하진 않을 것”이라며 “(초창기에) 시장에 잘 알려지지 못한 것도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금 선물이나 다른 금 관련 상품과 달리 개인투자자 진입 규제를 두고 있어 주목을 끌기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개인투자자가 국내 선물 시장에 투자하려면 사전교육을 1시간, 모의거래를 3시간 거쳐야 한다. 지난해 규제가 완화되기 전엔 사전교육에 30시간, 모의거래 과정에 50시간을 써야 했다. 금·돈육 선물만 따로 거래하는 경우엔 계좌에 기본예탁금이 50만원만 있으면 되지만, 코스피200변동성지수를 제외한 모든 선물·옵션을 같은 계좌에서 사고팔게 되면 최소 1,000만원 이상의 기본예탁금도 넣어야 한다.
해외 선물을 거래할 때 별도의 기본예탁금·거래교육·모의투자 규제를 두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더구나 단순 금 투자를 노리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금 현물이나 국내외 금 ETF, 금 펀드 등 다른 거래 선택지가 다양하다. 가령 국내엔 ‘TIGER 골드선물(H)’과 ‘KODEX 골드선물(H)’ 등 ETF 상품이 상장돼 있다. 둘 다 미국 금 선물을 추종하는 상품인데 환헤지까지 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 선물 시장을 상장폐지하기 보다는 발전시키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화로 거래되는 ‘토종’ 금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선물시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물시장이 존재하면 차익거래는 물론이고 위험분산까지 가능해 보다 효율적인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특히 원화 거래 금 선물 시장이 정착하면 환위험에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안정적인 거래가 가능하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 금 시장이 상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투자자들이 환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CME로 향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수요를 KRX 금시장으로 들여오는 것은 명분도, 의미도 있는 일”이라며 “시장조성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세제혜택을 마련하는 동시에 해외 규제와의 정합성을 맞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들을 계속 접촉하고 있는데 금 선물 시장조성자에 관심이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며 “KRX 금 현물이 올해 상반기 특히 붐을 일으켰다는 데에서 동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