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관계부처와 산업계에 따르면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도록 정부에 권고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4~25일 이틀간 국민정책참여단 500여명과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4대 분야(비전전략·기후대기·수송·발전) 8개 과제 중장기 정책 제안을 위한 종합토론회를 연다. 토론회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수송 분야의 ‘내연기관차의 친환경차 전환 로드맵’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을 △2035년 △2040년 △2045년 △2050년 중 하나로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나리오별로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따져 국민정책참여단에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안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난 9월 국민정책참여단의 예비토론회 때 없었던 2035년 안(案)이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안다”며 “국가기후환경회의와 환경부 등에서 2035년 시나리오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다음달 말 정책 제안으로 내놓으려는 친환경차 전환 로드맵은 사실상 내연기관차 사망선고와 다름없다.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곧 화석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차의 판매 금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서너 가지 시나리오로 판매 금지 시점을 추려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정부가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정책 제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떠나 대통령 직속기관의 ‘판매 금지 선언’ 그 자체만으로 완성차 업계는 물론 이와 연관된 후방 부품산업과 정유 업계까지 미칠 영향이 막대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피하기 어려운 대세지만 기존 완성차와 부품 업계의 부담을 고려해 글로벌 추세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친환경차 생태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연합뉴스
친환경차 범위도 조정
서울경제가 확보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자료를 보면 내연기관차의 친환경차 전환 로드맵은 △친환경차 전환 시점 △전환 대상 친환경차 범위 설정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지난달 국민정책참여단과 전문가들이 참여한 예비토론회에서는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을 2050년·2040년·2045년·기타로 제시했다. 하지만 오는 24~25일 개최되는 종합토론회에서는 2035년 안이 추가됐다. 일부 강경론자들은 2035년 안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환 대상 친환경차의 범위 조정도 정부에 함께 권고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친환경차 범위 조정 시나리오를 △전기·수소차 등 무공해 차량 △무공해+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무공해+하이브리드(PHEV·HEV) 등으로 제시했다. 현재 친환경차는 무공해 차량인 전기·수소·태양광차에 저공해 차량인 하이브리드차량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친환경차 범위를 하이브리드를 제외한 무공해 차량으로만 한정한다면 정부의 친환경차 보급 목표는 물론 친환경 기준을 맞추려던 자동차 산업에도 혼란이 불가피하다.
자동차 강국 美·獨·日은 신중
우리나라와 함께 자동차 산업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독일·일본은 아직 정부 차원에서 이렇다 할 내연기관차 퇴출 선언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주요국들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서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국가는 자동차 산업과 거리가 있는 나라들이다. 노르웨이(2025년)와 네덜란드(2030년), 영국(2035년), 스페인·프랑스(2040년) 등이 대표적이다. 오히려 신재생에너지발전 분야에 강점이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 내연기관차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하이난성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203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국가 전체적으로 확정된 로드맵은 없다. 정부가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으로 2035년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은 네덜란드나 영국 등의 속도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친환경 전환대세지만...속도조절해야
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자칫 늑장을 부리면 친환경차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고 유럽 등 친환경을 선언한 국가로의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문제는 속도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몇몇 유럽 국가들의 속도에 맞추는 것은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충식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유럽 일부 국가들의 내연기관차 퇴출 움직임은 철저히 자국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된 전략적 행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자동차 강국인 독일의 경우 지난 2016년 연방상원이 203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실질적인 입법 권한이 있는 연방하원에서는 부결됐다. 일본도 30년 뒤인 2050년에나 엔진 전용차 퇴출 계획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경우 2035년 판매 금지를 선언한 곳은 현재까지 캘리포니아주(州)가 유일하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수익사업을 갑자기 포기하기는 어렵다”면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시기를 저울질하면서 기존 내연기관차의 수익성을 기반으로 친환경차 생태계 전환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 무시” 반발도
국가기후환경회의의 행보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 토론이 요식행위에 그칠 뿐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문제 제기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안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일반 국민 500여명을 앉혀놓고 대뜸 ‘몇 년에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전문가 토론회에는 전기차 연관 분야 투자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이 내연기관 퇴출에 찬성하는 측의 입장을 설명하는 패널로 섭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연기관차 퇴출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인데 국가기후환경회의가 한 쪽 얘기만 듣고 일방적·즉흥적으로 의사결정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내에서도 부처 간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국가기후환경회의와 적극적인 친환경차 전환을 추진하는 반면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는 급격한 전환이 자동차 산업을 흔들어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재영 서종갑 기자 세종=김우보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