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일대 아파트 전경/서울경제DB
# 실거주 목적으로 수도권의 한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A 씨. 현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의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집주인의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6개월 전에 매매 계약을 마치고 등기를 치려는 중이다. 그런데 주택담보대출을 위해 찾아간 은행에서는 “6개월 내 전입을 하지 못하면 대출이 회수된다”고 했다. A 씨는 “실거주를 하려면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6개월 내 전입을 못하면 규제 대상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냐”며 황당해 했다.
정부의 주택 관련 규제가 충돌하면서 내 집 마련에 나선 ‘실거주 매수자’가 또 다시 고통 받고 있다. 예상 못한 규제 부작용으로 주택시장에서 애꿎은 피해자가 나타나는 양상이 거듭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실거주 주택 매수에 나서는 과정에서 이 같은 중복 규제를 피하기 위한 집주인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주택임대차법 규제에 따라 현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최소 6개월 전에는 등기부 등본 등재를 마쳐야 하는데, 금융 규제는 ‘6개월 내 전입’을 강제하고 있어서다.
지난 7월 31일 시행된 ‘임대차 3법’에 따르면 실거주를 목적으로 한 매수자가 이를 이유로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를 거절하려면 임대차 계약 만료일 최소 6개월 전에는 등기 이전을 마치고 실거주 의사를 세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최소한 만료일 6개월 전에는 모든 매매 계약을 마쳐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은 경우라면 지난 6·17 대책에 따른 ‘6개월 내 전입 의무’가 발목을 잡게 된다. 당시 금융위는 조정대상지역에서 주담대를 받아 집을 산 경우 6개월 내 반드시 전입하도록 했다. 6개월 내 전입하지 못하면 대출을 회수하고 3년 간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된다.
임대차 규제는 ‘6개월 이상’ 거리를 두라고 하고, 금융 규제는 ‘6개월 내에’ 입주를 하라고 하니 매수자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정에 놓이는 것이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정확히 계약 만료 6개월 전에 등기를 치고, 만료 당일 주소 이전을 하지 못한다면 의도치 않게 범법 행위자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세난 심화로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들 또한 새로운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계약 만료일에 입주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로 인한 규제는 양쪽 모두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자칫 매수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치명적이다.
당국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명확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는 사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출 회수는 각 은행이 판단할 문제지만 이런 문제로 며칠 정도 전입이 늦어진다고 해서 실제 대출 회수가 이뤄지진 않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엄밀히 따지면 위반은 맞다. 세입자 있는 집을 살 때 매수자가 미리 체크해놓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매수자들은 세입자가 나가기 전인데도 미리 전입신고를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또한 불법이라는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거래 목적이 실거주라면 청구권 거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