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이 ‘정부 여당 인사가 포함된 옵티머스 펀드 투자자’ 명단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펀드 투자자의 실명과 투자금액이 담긴 ‘옵티머스 투자자 명단’이 공개되며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일부 개인투자자는 원치 않는 명단 공개에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고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관련 법의 입법 취지에 저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정치권과 금융투자 업계 등에 따르면 ‘옵티머스 펀드 투자자 명단’에는 펀드가 판매되기 시작한 지난 2017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의 법인과 개인 등 펀드 고객 3,359명이 포함돼 있다. 명단은 투자 시기와 실명(개인·법인), 투자금액, 판매사 등의 정보를 낱낱이 담고 있다. 기존에 투자 사실이 알려진 JYP엔터테인먼트(40억원 투자·12억원 손실)와 LS메탈(50억원 투자·15억원 손실), 한국전파진흥원과 한국농어촌공사 등 외에도 비상장사인 한화종합화학(500억원)과 상장사 오뚜기(150억원), 에이스토리(130억원) BGF리테일(100억원), HDC(65억원) 등이 거액을 투자했고 성균관대와 한남대·건국대 등 유명 대학들도 각각 40억여원을 투자했다. 재계 총수들의 이름 다수도 명단에 포함됐는데 이 중에는 1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정권 차원의 게이트 의혹을 받고 있는 펀드 사기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상당수 일반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뜻하지 않게 소중한 개인 금융정보가 노출돼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목돈을 날렸지만 속앓이만 한 채 사태 해결을 기다려온 투자자 입장에서 명단 공개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차상진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금융당국에서 정보 요구를 할 때도 개인투자자 중에는 정보제공에 반대하는 투자자가 대다수였다”며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투자한 사람들의 경우 입장이 무척 난처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증권가와 기업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명단이 유포된 뒤 대내외에서 문의가 쏟아지자 NH투자증권은 “고객명단을 언론이나 정치권에 제공한 적이 없다”고, 70억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난 안랩은 “보도된 금액은 투자액이지 손실액이 아니”라며 즉각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법적인 문제도 상존한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법률 4조에 따르면 투자자의 동의 없는 금융거래정보 제공 및 누설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법원의 제출명령이 있는 경우 △ 국정조사에 필요한 자료로서 해당 조사위원회 의결이 있는 경우 △금융회사 등에 대한 감독·검사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경우 등에 한해 금융사의 투자자 금융거래정보 제공이 가능하지만, 법은 이렇게 거래정보를 알게 된 자가 그 거래정보 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그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명단 공개 및 유포 주체를 국회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날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이 투자자 명단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추정이 사실일 경우 이 역시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이나 그 사무보조자가 감사나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비밀을 정당한 사유 없이 누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인 사안에 대한 알 권리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일반투자자들의 신원 유포는 막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섣부른 명단이 공개가 가뜩이나 땅에 떨어진 사모펀드 시장의 신뢰를 악화할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대가를 약속받거나 하는 식으로 위법적 요소가 있다면 명단 공개의 공익성이 있지만, 사기의 피해자인 개인 투자자의 명단 공개는 신중해야 할 문제”라며 “투자자들이 사모펀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사고가 났을 때 정보 공개를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가 하는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