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가장 큰 사업은 육군의 UH-60 기동헬기 후계 사업. 한국군에서는 비교적 신형 기체로 분류되지만 UH-60조차 기체연령이 20~29년에 이른다. 대한항공이 1991년부터 1999년까지 면허생산한 기체 139대 가운데 특수작전용을 뺀 103대가 교체 또는 개량 대상이다. 수량이 많은 만큼 사업비도 크다. 최대 3조원 사업을 놓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성능 개량형 수리온과 미국 시코르스키(록히드 마틴 계열)의 개량 키트가 맞서게 됐다.
UH-60 시리즈의 최종진화형인 V형. 육군은 보유 중인 UH-60P형 103대를 M형으로 개량하거나 국산 수리온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미국은 약 4,000여대가 생산된 이 시리즈 중에서 일부만 V형 모델로 개조하고 차세대 헬기로 넘어갈 예정이다.
◇수리온 개량형은 ‘성능 동등’= 성능은 어느 기종이 우월할까. 현재 기종을 기준 삼으면 수리온이 딸린다. 수리온의 최대 이륙중량이 8.7t인 반면 UH-60은 10.6t. 탑승 무장병력도 UH-60(11명)이 수리온(9명)보다 많다. 그러나 비교 대상은 두 기종 다 성능개량형이다. 지난 8월 성능을 비교한 합동참모본부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분석에 따르면 두 기종의 성능은 동일하고, 자동비행과 헬멧 통합 등 첨단 성능에서는 오히려 수리온이 앞선다. 수리온 성능개량형의 최대 특징은 기어박스를 재설계, 엔진 출력을 극대화한다는 점. 이륙중량과 탑승 무장병력이 UH-60 개량형과 동일하다. 수직상승률과 제자리 비행 최대 고도는 수리온이 우세하다.
국산 수리온 헬기. 4,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 UH-60과 동등한 성능으로 끌어올리는 개량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첨단 기어박스 개발이 완료되면 국산화율이 10% 올라가고, 이미 생산, 배치된 수리온 계열 헬기도 창정비시 보다 강력한 기체로 다시 태어날 길이 열린다.
◇ UH-60 보다 수리온 선택해야= 동일한 성능이 발현된다는 전제가 성립된다면 선택은 자명하다. 수리온이 선택되어야 한다. 다섯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가격. 물론 액면 획득가는 UH-60이 낮다. 개발비 2,652억원과 대당 성능개량비 153억, 노후 기체의 기골 보강비 50억원 등 2조 3,500억원대 예산이 들어간다. 반면 수리온은 성능 개량 연구에 투입될 4,000억원을 포함해 2조 9,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계산식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 회계감사국에 따르면 회전익기의 30년 운용유지비용은 획득비용의 3배가 들어간다. 개량과 주요 부품 조달과 수리를 해외에 의존하는 경우 부담은 더 커진다. 국산 항공기의 운용유지비용은 국외보다 약 3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보이지 않은 가격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수명주기와 국내외 수급 상황. 안승범 디펜스타임즈 대표는 “우리 군은 해외 신품 직도입이나 국내 생산한 회전익은 50년, 중고 도입기는 30년 정도의 수명주기를 갖고 있다”며 “이미 기령 30년에 이른 UH-60을 개량하더라도 첫 생산 후 50년을 넘겨 가며 얼마나 더 오래 운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미군도 일부 기체만 최신형인 UH-60 V로 개량하고 차세대 헬기로 옮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셋째는 헬기 전력 공백 우려. UH-60을 택할 경우 해마다 일정대수는 개량 작업을 위해 현역에서 빠질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UH-60은 물론 CH-47 치누크 헬기의 피로도가 높은 마당에 실질 운영 헬기가 급속하게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수리온은 신규 생산이기 때문에 헬기 전력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UH-60이 자동도태되는 순간까지는 되려 증강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안 대표는 “새로 창설되는 한국형 공중강습사단에 신형 수리온 헬기를 몰아주고 기존 UH-60은 일선 사단에서 운용한다면 군의 종합전력이 훨씬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넷째는 진화적 개발을 통한 기술 축적. 개량형 수리온이 ‘UH-60 동등’ 성능을 낸다면 기존의 수리온도 창정비를 통해 개량형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수리온 블록 10, 20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양대 조진수 교수(금속공학부·전항공우주협회장)는 “미국 F-16 전투기가 나온지 40년 넘도록 최신형을 자랑하는 것은 꾸준한 개량 덕분이며 우리도 국산 무기를 사줘야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섯째,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셈하기도 어렵다. 수리온 개량형 개발로 획득될 기어박스와 비행제어 장치 등 핵심기술의 수입대체 효과는 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경남 사천 등지의 중소항공업체의 일자리도 유지하거나 늘릴 수 있다. 조 교수는 “자동차나 반도체의 국산화 의지가 없었다면 한국의 오늘날은 없었다”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더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국방예산이 국내에 환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산보다 해외 무기’ 수상한 예비역들= 국산 수리온이 갖고 있는 장점과 잠재력에도 국회에서는 ‘외국산 장비가 훨씬 낫다’는 주장이 버젓이 나오고 있다. 보수정당의 장성 출신 의원이 육군 기동헬기 뿐 아니라 해병대용 상륙공격헬기에 이르기까지 외국산 장비가 우수하다고 강조하는 행태까지 일어났다. 정치권 뿐 아니다. 전문연구기관의 용역 연구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합동참모본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위법 가능성을 제기한 공무원도 있었다. 군도 제대로 된 요구성능(ROC)을 제출하지 못해 오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무기 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국방위원회 소속이던 김종대 전 의원은 “미국은 조선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이후에도 군함은 자국에서만 건조하는 등 어느 나라든 국산무기를 우선 획득하는 게 원칙”이라며 “예비역 장성이 해외 무기업체의 대리인을 대놓고 맡는 나라도 한국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방산 비리의 대부분은 해외 무기 도입에서 발생한다”며 “‘명백한 이해 충돌’ 가능성이 큰 예비역 장성들의 해외방산기업 취업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산무기체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군 지휘부의 용단도 필요해 보인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센터장은 “수리온과 소형무장헬기(LAH)의 꾸준한 개량, 무인기와 연결 등 소프트웨어 개발이 전제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 세계수준에 접근할 수 있는데, 최근 일부 흐름을 보면 항공 산업 발전의 맥이 끊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 센터장은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각군 총장부터 국산 수리온을 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