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헌 고려대 교수, 경제학
유럽·미국 등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국채를 적극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일본정부가 발행한 1,000조원에 육박하는 신규발행 국채를 매입키로 했다. 최근 7조원이 넘는 4차 추경예산에 대한 국고채 발행 조달 계획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올해 말까지 총 5조원 내외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한 G20 국가들의 직접적인 재정투입 규모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GDP 대비 3~4% 수준보다 훨씬 높은 7%를 상회하고 있는 상황이고 한국도 4차 추경예산 집행으로 당분간 대규모 재정투입은 불가피해 보이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통한 정부 재정적자의 보전에 대한 우려는 국내·외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채의 화폐화(monetization)’는 정부 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중앙은행에 국고채를 매각하는 것으로 이는 정부부채의 화폐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중앙은행이 국고채를 매입한다고 해서 부채의 화폐화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급속히 침체됨에 따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세계 중앙은행들은 국채 매입을 통해 긴급히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했듯이 한국은행도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국고채를 매입해왔다. 그러나 한은이 매입하는 국고채 규모가 적지 않고 정부의 4차 추경예산 재원 확보를 위한 국고채 발행 조달 계획과 맞물린 상황에서는 금융시장의 반응도 한은의 국고채 매입이 시장 안정화 목적보다 정부의 재정조달에 무게를 둘 여지가 크다.
정부부채의 화폐화는 세 가지 관점에서 우려된다. 첫째,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자산시장의 과열이다. 재정적자가 화폐공급의 증가로 보전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여지가 크다. 현재 일본과 같이 장기침체의 징후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유동성이 급속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하나 언제든지 급속한 물가 상승으로 전개될 위험이 잠재돼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2007년 짐바브웨 정부가 화폐를 발행해 개인이나 기업에게 지불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세계 역사상 가장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도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흘러가 자산가격의 인플레이션과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실물경제와의 괴리를 가져올 수 있다. 실물경제와 괴리된 자산가격의 버블은 머지않아 붕괴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둘째, 재정건전성의 악화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가 심각해 전례없이 완화된 경기부양책이 불가피한 반면 경기회복의 V자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인상 등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국채의 화폐화를 통해 국가채무 비율을 과도하게 늘리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이는 국가경제에 큰 부담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정지출 확대는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단기적·일시적 처방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국의 경우 채무비율이 40%로 낮아 재정지출을 무작정 확대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셋째, 국제금융시장에서 국가신인도의 하락이다. 국채발행이 과도해지고 중앙은행이 이러한 국채를 매입하게 되면 대내적으로 인플레이션 및 재정건전성이 우려되고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통화 가치의 급락 및 국채투자의 급속한 감소를 가져온다. 결국 국가신인도는 크게 떨어지고 국내로부터 해외자본이 급속히 유출되며 국고채 금리는 급등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심각한 경기침체에 대응해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하고 재정·통화당국이 거시경제정책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나 ‘국채의 화폐화’는 많은 부작용이 우려돼 적절한 정책수단이 아니다. 한은은 정부부채의 화폐화에 맞서서 재정확대에 대한 적절한 통제 역할을 담당해 재정건전성에도 기여하고 중앙은행 독립성의 취지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