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듣고 있다./연합뉴스
감사원이 역대 최장 기간인 385일 동안 감사 보고서를 의결하지 못한 배경에는 해당 자료를 삭제하고 은폐하려는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의 조직적 저항이 있었던 것으로 20일 드러났다. 이 같은 조직적 저항이 일고 있는 와중에 정부 여당 역시 이념화된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최재형 감사원장의 정치 편향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등 외압을 가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1일 국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를 요청한 후 385일 만인 지난 19일 감사 보고서를 의결했다. 그 이전에 가장 오래 걸린 감사는 2006년 12월 청구된 ‘부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국민주택기금 부실 대출’ 관련 건으로 결론을 내는 데 375일이 걸렸다.
감사원 감사위원회는 4월 초 실무진으로부터 보고서 초안을 받고 이후 4월9일·10일·13일 세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 원장은 다음날인 4월14일 총선을 전후해 휴가를 냈고 돌아온 직후 공공기관감사국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후 이달 7일에서 16일까지 다섯 차례 회의를 개최한 뒤 19일 결국 최종 의결에 이르렀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는 감사위원회의 의결이 이처럼 늦어진 배경이 드러났다. 감사가 첫발을 떼기도 전에 산업부가 관련 자료를 은폐하고 저항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감사 보고서에는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감사원으로부터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공문으로 요구받자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한 문서 등 대부분을 누락했다”는 내용에 담겼다. 최 원장이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라고 토로한 조직적 저항의 전말이 밝혀진 셈이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한국수자원공사·한국환경공단 등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하고 있다./연합뉴스
최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지키려는 여당 의원들의 ‘중립성 흠집 내기’도 감내해야 했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최 원장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 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발언을 했다”며 최 원장을 몰아세웠다. 당시 최 원장과 대화를 나눈 당사자이자 감사 대상인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송 의원이) 최 원장이 한 발언이라고 소개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최 원장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백 전 장관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안이라고 말씀했고 (저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41%의 지지를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국민의 대다수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이게 관련된 내용의 전부”라고 말해 논란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총선 사나흘 전에 대통령의 지지율을 언급해가며 언급할 만한 사안이냐”며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았고 신동근 의원 역시 “이는 대통령 우롱을 넘어서 대선 불복이나 다름없는 반헌법적인 발상”이라고 하는 등 공세를 퍼부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