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은 열병같은 시기다. 주어진 현실과 불안한 미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기다. 남들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하고 나아질 거라는데 세상은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 나아가느냐 멈추느냐, 세대가 변할수록 그 선택의 폭은 다양해진다.
채송아(박은빈)와 박준영(김민재)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선택의 기로에 섰다. 천재는 아니나 꿈을 꾸는 그녀와 천재이나 안식처가 없는 그 모두가 악기를 내려놓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머리, 꽉 뭉쳐 내려가지 않는 가슴 속 응어리가 보이지 않게 화면을 가득 채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에 앞서 성장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불안한 스물아홉 청춘의 선택과 위로, 그리고 새로운 출발까지. 안정적이고 따스한 시선으로 초반부터 15부까지 잔잔하게 이어왔다. 작품은 이미 ‘내려놓음’을 겪었거나 겪게 될 이들에게 ‘나의 선택을 믿으라’고 꾸준히 이야기를 건네왔다.
바이올린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채송아는 체임버의 단원이 아닌 총무를 하면서까지 음악을 계속하느냐, 그만 내려놓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내려놓음을 택했다. 교수의 달콤한 제안은 말만 그럴싸했을 뿐, 음악을 배우는 것의 단계를 넘어서는 기로에서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대학원 입시연주에 적힌 50점, 그것이 선택에 대한 냉혹한 대답이었다.
주변에 대한 부채의식과 가정형편에 떠밀려 20대의 끝에 다다른 박준영에게도 내려놓음의 순간이 왔다. “너무 힘들다, 피아노가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그에게 “그래도 된다”고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늘 그렇듯 혼자였고, 주변을 살펴야 했으며, 나 혼자 아파야만 했다. 우산과 함께 떠나버린 채송아가 몹시 그리웠다.
“받아주지도 않는 짝사랑 그만 하려고. 혼자 사랑하고 상처받다 끝났지만, 그동안의 행복 그거면 됐다”는 말은 이들 모두를 향한다. 그리고 어쩌면 모두에게 마지막이 될 연주, 첫 번째 하모니에서 채송아와 박준영은 아름답게 빛난다. 그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빛이요, 그에게는 그동안의 짐을 모두 털어내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따라가라고 했었죠. 그래서 말하는거에요. 내가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것도 알고 이렇게 말하면 송아씨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아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말해요.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은 나도 내 생각만 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자유롭지만 고독한 시간을 떨쳐내고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순간을 위해, 그렇게 그들의 스물아홉 마지막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