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과 국화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로 11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생활고 등으로 숨졌다. 노동계는 택배기사 과로사의 원인으로 ‘분류작업’을 꼽으며 “수당도 생기지 않는 공짜노동”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택배업체는 애초 기사와 계약을 맺을 때부터 분류작업을 기사의 역할로 뒀고, 분류작업은 배송작업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반박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국정감사 현장감사를 21일 서울 서초구의 CJ대한통운 화물터미널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최근 택배기사의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직접 현장을 찾아가 보겠다는 뜻이다. 전날 부산의 로젠택배기사가 생활고를 토로한 유서를 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되면서 올해 숨진 택배 기사는 11명으로 늘었다. 지난 8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인 고(故) 김원종 씨도 배송 업무 중 숨졌다.
노동계는 택배기사 과로사의 주된 원인을 분류작업에서 찾는다. 분류작업이란 기사가 택배를 운송하기 전 자신이 맡게 될 상품을 찾아내는 작업을 의미한다. 택배 터미널에 상품이 분류되지 않은 채 쌓여있으면 주소 등을 보고 자신의 담당 지역인지를 찾아내야 하는데 기사들은 적어도 몇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라고 말한다. 수수료는 배달 건수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에 분류에는 별다른 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짜노동’이라는 말이 붙었다.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달 17일 추석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추석 배송 기간 동안 거부하겠다고 밝힌 분야도 분류작업이다. 이들은 분류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택배 회사들은 배송과 분류는 분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택배기사가 자신이 배달할 물건이 무엇인지 분류를 해야 배송을 할 수 있으므로 배송이라는 큰 업무에 분류는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택배기사와의 계약에는 ‘분류업무’를 기사가 하도록 해놨다고 노동계의 주장을 반박한다. 수수료에는 배달하는 몫 외에도 분류하는 비용까지 합산돼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택배사의 주장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공짜노동’ 논란은 국회에서도 나온 바 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하자 “노조는 운전이 일이라고 하는데 택배회사는 분류가 운송을 하기 위해서 물품을 인수하는 부수적 업무라며 운송 업무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며 “관행이라고 하는데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칼로 무 자르듯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문제’라는 말이다.
지난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국정감사에 윤성구 CJ대한통운 파주제일대리점장이 증인으로 출석해있다. /연합뉴스
근본적으로는 분류작업을 자동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미 택배업체 1위인 CJ대한통운은 물품 분류 작업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바코드 등을 인식해 택배기사 별로 택배를 분류하면 기사들이 이를 인수하기만 하면 되니 간편하다. 다만 2위 이하의 업체는 비용부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자동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정부의 보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날 국정감사에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국가에서 일터혁신이나 이런 데 대해서 지원하는 융자금이 있지 않느냐, 이자도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지적하자 정형우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노동부라든지 관계부처와 협의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