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가 힘을 잃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의 경제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달러를 마구 풀자 그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내에서 달러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상품 수익률도 하락 추세를 밟고 있다. 일부에서 ‘쌀 때 사두자’며 저가 매수를 보이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약세가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 분위기다.
23일 증권가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미 달러화의 정방향에 베팅하는 ETF·상장지수채권(ETN)의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이 달러선물지수를 추종하며 지수 상승분의 두 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들로, ‘KODEX 미국달러선물 레버리지’의 경우 10월 들어 6.05% 떨어졌다. ‘KOSEF 미국달러선물’ 등 1배짜리 상품의 경우 이달 약 3%대의 하락폭을 보이고 있다.
이는 미 달러화의 가치가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인덱스는 지난 21일 92.61까지 밀렸다. 유로화, 엔화, 스위스프랑 등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인데 92선으로 접어든 것은 9월18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처음이다. 23일 93선까지 반등하기는 했으나 올 3월 코로나19 사태 직후 이 지수는 100을 크게 넘어선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미 정부와 연준이 경기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대규모 돈 풀기에 나서고 이후에도 물가상승률을 높이기 위해 완화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강해지면서 달러화의 몸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부와 연준이 물가가 올라가도 달러화를 계속 더 찍어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약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오는 11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국면도 달러 약세를 이끄는 한 축으로 꼽힌다.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경기부양 등을 위해 더 많은 돈이 풀릴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다만 달러 약세장을 이용해 매수에 나서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KODEX 미국달러선물’과 ‘KODEX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의 경우 이달 들어 개인 순매수가 각각 22억원, 17억원 규모로 매수 우위를 보이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는 달러 약세가 더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에릭 로버트슨 스탠다드차타드(SC) 리서치헤드는 미 경제전문방송 CNBC에 나와 “미국 무역수지가 15년 만에 최악”이라며 달러화가 추세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도 달러인덱스가 2018년 최저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2018년 최저 수준은 89 수준으로 현재보다 3~4% 정도 추가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대선 이후 재정적자 기조, 추가 경기 부양책과 글로벌 경기의 동반 회복을 고려하면 달러화 약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 높다”고 밝혔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