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사진제공=삼성
경제계 거목(巨木)이 스러졌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자’는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사진)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 2014년 5월 10일 오후 자택에서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나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진 이 회장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응급 처치로 심장기능 상태를 회복한 이 회장은 이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심장 혈관 확장술인 ‘스텐트(stent) 삽입 시술’을 받고 위기상황을 넘긴 뒤 줄곧 치료를 이어왔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가 끝난 후 고인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내 선영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폐 부분의 림프암이 발병해 1999년 말∼2000년 초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은 뒤 재발 방지를 위해 매년 겨울이면 기후가 따뜻한 해외에서 지내며 각별하게 건강관리를 해왔다.
지난 2013년에도 1월 초 신년행사 후 출국해 3개월 가량 해외에 머물면서 요양과 경영구상을 하다 4월 귀국해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인사를 단행하는 등 그룹의 체질과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이 회장이 입원하면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 사업 구조조정과 새 먹거리 발굴을 진두지휘하면서 삼성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삼성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이 회장이 타계하면서 그룹은 물론 한국 재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지난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일본 게이오대를 졸업하고 1968년 동양방송에 입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1977년 선친인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이 회장은 1979년 삼성물산(028260) 부회장에 선임돼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87년 11월 선친이 타계하면서 그룹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5년 뒤인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으로 임직원들에게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을 주문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삼성은 ‘7.4’제 도입과 라인스톱제 등 ‘질(質) 경영’을 추진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이 회장은 늘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기술·인재 경영을 펼쳐 삼성전자가 미국 애플과 일본 소니 등을 제치고 세계 1위 종합전자 회사로 도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 1982년부터 15년 간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비인기 종목인 레슬링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으며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피선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일익을 담당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69) 여사와 1남2녀가 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이 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